카스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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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는 1947년 법적으론 금지되긴 했지만, 인도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도 사회에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다. 석가모니도 마하트마 간디도 카스트만은 건드리질 못했다. 간디는 카스트가 각기 다른 인간의 차이에 의한 자연스런 반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승려계급), 크샤트리야(무사계급), 바이샤(工商계급), 수드라(노예계급) 등 4개 계급 외에 수드라 이하의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인구 중 브라만은 7% 가량이며, 20% 이상이 수드라 이하의 계층에 속한다.

‘다리트(Dalit)’로 불리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s)은 온갖 멸시와 배척을 받으면서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하는데, 이들은 인도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이보다 더 낮은 계급이 ‘부족민’ 또는 ‘트리발(Tribal)’로 일컬어지는 토착민들로 약 5,000만 명에 이른다. 다리트와 트리발은 아예 카스트에 끼지도 못하는 열외 인간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남상욱은 인도에서 인간 생명 경시 풍조가 매우 심각한 이유가 바로 카스트 제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카스트의 본질은 인간을 원천적으로 생각하는 자(영혼이 있는 자)와, 단순히 일만 하는 자(영혼이 없는 자)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카스트 체계하에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존재는 영혼을 가진 브라만 등 상층 계급에 국한된다. 하층 계급, 특히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과 토착부족민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치부된다. ······ 영혼이 없고 생각하는 주체도 아닌 최하층에게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상층 계급으로서는 크게 개의할 필요가 없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신도는 전체 인구의 0.8%인 8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남상욱은 그렇게 된 이유는 내부의 권력 다툼과 타락도 있었지만 불교가 기본적으로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고 남녀평등 사상에 따라 승려 계급에 여성 참여를 허용해 기득권층의 격렬한 반발과 저항을 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도전문가 이옥순은 2002년에 출간한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에서 그간 한국에서 출간된 인도 관련 소설과 여행기,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 등을 분석했다. 그는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구원을 얻기 위해 ‘갑자기’ 인도로 간다”고 말했다. 이옥순은 한국의 필자들이 인도의 요가, 고행, 명상, 정신주의를 예찬하고 심지어 가난까지 예찬하는 이면에 숨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발견했다.

반면 『시민의 신문』 2005년 3월 21일자에 실린 ‘이유경의 아시아 여행기: 인도를 떠나며’는 그간의 인도 기행문과는 크게 다르다. 「일상화된 폭력, 그것은 카스트였다: 가부장적 엘리트주의 만연한 한국 사회와 유사」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유경은 카스트 제도의 추한 면을 고발했다.

“한국과 인도는 비슷한 구석이 은근히 많다. ‘엘리트주의’와 ‘허례허식’은 대표적으로 닮은꼴이다. 나는 인도 엘리트주의의 본산인 카스트 제도에 질려 가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카스트 현상’을 자연스럽게 반추하곤 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달리 말하면 직업과 신분의 대물림이다. ······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한국에서 부와 직업, 그를 통해 얻게 되는 사회적 신분이 대물림되는 경향은 늘어만 가는 빈부격차와 함께 점점 더 또렷해져 가는 현실 아닌가. ······ 두 사회 모두 ‘보여 주기’에 온 정열을 쏟아 붓는 결혼식 과정도 그렇거니와 인도의 결혼지참금 제도인 ‘다우리(Dowry)’는 한국의 혼수품 문화와 닮았다.”

이어 이유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자격 증명서는 무엇인가?’ 내 가방끈이 얼마나 긴지 묻는 이 질문을 나는 인도와 한국을 제외한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다. ······ 아울러 나는 인도의 브라만들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진보적인 체하면서 결국 ‘브라만’임을 드러내는 현실을 보며, ‘삼성맨’·‘조선일보맨’·‘서울대 출신’, 더 나아가 ‘연대-조선일보’·‘경기고-서울대’·‘이대-서울대 혼인’ 뭐 이런 한국판 ‘카스트 현상’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이유경은 “인도 체류 5개월 동안 나는 공개된 장소에서 5번의 성추행을 당했으며 히죽대는 남정네들의 ‘느끼한 눈길’은 거의 일상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한국도 ‘한 성폭력’ 하는 사회건만 그곳에서 살아온 30년 동안 지하철 성추행을 두 번 당한 내가 인도에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당한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인도 5개월은 내게 큰 후유증을 심어 놓았다. 내가 그토록 비판했던 ‘인종주의적 편견’이 바로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콧수염’(다른 뜻은 없음)에 대한 본능적 역겨움도 생겨났다. 오죽하면 무슬림이 눈에 많이 띄었던 구자라트에서 ‘턱수염 무슬림’들이 반갑기까지 했을까. 여기서 잠시 덧붙이면, 나는 무례하거나 나를 향해 낄낄대며 희롱하듯 말 거는 무슬림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2004년 8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56차 유엔인권보호증진소위는 출생 신분과 직업의 귀천에 따른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문제를 조사할 인권특별보고관에 선임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진성은 2004년 9월 불가촉천민 문제를 안고 있는 인도와 네팔을 돌아보려 했으나 인도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인도는 한국 정부에 항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완강함을 말해 주는 증거라 하겠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흉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인도전문가인 부산대 교수 이광수에 따르면, 브라만 출신 창녀도 있고 수드라 출신 학자도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에서의 서열은 카스트가 아니라 돈과 힘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척도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많으며 카스트의 완고성은 음식과 결혼의 영역에서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는 카스트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불가촉천민을 위한 공약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 인도의 유력 일간지 『스테이츠맨』은 67년 “Caste hierarchy declines as Casteism rises”라고 말했다. 세습·배타·위계의 카스트 구조는 쇠퇴하고 있는 반면 카스트 몰표가 이뤄지면서 카스트 의식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카스트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그는 “카스트가 가진 자들의 억압과 착취의 도구로 이용되어 온 것에 대해선 부인할 수 없지만 이 제도 또한 역사의 발전에 따라 변화해 온 것이다. 어느 한쪽에게만 일방적으로 작용해 온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제도 속에서 민중들은 때때로 카스트의 단결을 통해 정치·경제적 이득을 확보할 수 있었고 신분의 변동을 이루기도 했다. 그물망처럼 형성된 상호 관계들이 사회·경제적 분업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어 그 안에서 고유의 직업에 종사하는 한 최저의 생활은 보장된다. 이와 같이 카스트 제도는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진 체계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스트 하층이 다수결의 힘으로 뉴델리의 하원에까지 진출하자 상층 계급은 민주주의가 인도를 망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으며, 이런 불만은 자주 폭력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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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특별보고관 정진성 서울대교수 ‘불가촉천민’ 조사나선다」, 『세계일보』, 2005년 3월 22일, A30면.
남상욱, 『인도, 21세기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빛, 2000년.
이광수, 『인도는 무엇으로 사는가』, 웅진출판, 1998년.
이옥순,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푸른역사, 2002년.
정병조, 『인도사』, 대한교과서, 1992년.
스탠리 월퍼트, 이창식·신현승 옮김, 『인디아, 그 역사와 문화』, 가람기획,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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