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벼락 거지`와 빚투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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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07. 오전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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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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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매입 미루는 새 집값 급등
전세난 겹쳐 이도저도 못할 처지
직장인 집 포기하고 주식에 몰려
증권거래세만 9조원 작년 두 배
신용융자 늘어 `빚투` 아슬아슬


요즘 부동산시장에서는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월급을 아껴 따박따박 저축을 했는데 집값이 폭등하고 유례 없는 전세난까지 겹치면서 전세는 커녕 월세난민 신세로 전락한 이들이 스스로를 비하해 부르는 말이다. 한 순간에 부자가 됐다는 뜻의 '벼락 부자'에 빗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거지 꼴이 됐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디어에는 같은 연차의 직장 동료가 집을 샀느냐 아니냐에 따라 처지가 완전히 달라진 사례까지 자세히 비교하는 얘기들이 넘쳐나는 마당이니 무주택자들은 스트레스가 고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눈을 돌리게 되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올들어 국내외 주식시장에서 똘똘하게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동학 개미' '서학 개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각광을 받던 차다. 거기에 국내외에서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바꿔치우자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웬만한 직장에서는 2~3명만 모이면 주식 얘기가 꽃핀다. 부동산도 화제이기는 하지만 넘보기 힘든 산인데 비해 주식투자는 훨씬 현실적이기 때문에 집중도가 더 높다. 주식투자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소액의 자금으로라도 시작할 수 있어 훨씬 현실감 높은 재테크 방법이기는 하다. 월급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평생 전월세 난민 신세를 면하지 못할 판인데 활황이 된 주식시장에 잘만 올라타면 종잣돈을 만들어 아파트를 살 기회를 잡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주변에서 부모.친지를 비롯해 갖가지 경로로 돈을 끌어 모아 아파트를 샀다가 수억원의 차익을 봤다는 얘기라도 들을라치면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게다. 수중에 가진 돈도 없고 수억원 대출 받을 길도 막힌 마당에 수억원의 목돈이 없을 때엔 결국 주식투자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자연히 직장인들 중에 주식투자에 나서는 이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주식투자 열풍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지난 9월말 현재 3370만개에 달했다고 한다. 올해에만 14%가 늘어난 것인데 휴대폰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투자자들도 작년에 비해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니 주식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거기에 최근 코스피 랠리가 이어지면서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추세다. 주식투자 참여가 늘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올해 정부가 거둬들일 증권거래세 수입이 2배로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올해 증시에서 거래된 액수는 5100조원을 넘어서고 거래세 수입은 9조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추산이다.

주식 열풍에 정부는 세수가 늘어나서 웃음짓겠지만 일터에서는 근로의욕이 꺽였다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는 직장인들도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하는 걸 성공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을 정도다. 부부가 맞벌이로 일만 열심히 하다가 부동산 정보 등을 소홀히 해 집 살 기회를 못잡은 이들은 일찌감치 집을 산 동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무주택인 일부 직장인들은 반대급부를 얻으려 주식투자에 신경쓰면서 상사에게 업무 평가를 나쁘게 받는 것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심지어는 회사를 주식투자할 자금(월급)을 대주는 곳으로 인식하는 이도 적잖다니 지금의 주식 열풍은 정상궤도를 한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 밑바탕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월급쟁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 부동산이 자리잡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월급이 고작 1~2% 오르는 사이에 집값은 50~80% 폭등한 게 현실이다. 이제는 입지가 좋은 지역의 전셋값 마저 수 개월 새에 1억~2억원 이상 뛰어 기회손실을 만회하려는 이들에게는 주식투자 외엔 뽀족한 수가 안보이긴 한다. 투자금이 없는 이들은 신용대출이라도 끌어서 투자하려는 욕구가 생길 법하다.

실제로 급증하는 신용대출 규모를 보면 위태롭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지난 3분기 통계치에 따르면 가계신용 잔액이 1682조원을 웃돌았다.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가장 많은 규모라고 한다. 2분기 말에 비해서도 33조8000억원이 넘게 늘어난 것이다. 거기에는 주택담보대출도 890조원대로 17조원 이상 증가했지만 특히 많이 늘어난 것은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다. 지난 3분기말 기타대출 잔액은 695조원을 넘어 22조원 이상 늘면서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그 중 증권사를 통한 대출이 3조8000억원에 달하면서 주식담보대출 등 신용융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주식투자를 하려는 대기성 자금 성격의 투자자예탁금도 급증했다. 11월초에 51조원대이던 투자자예탁금은 18일만에 65조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 수준이 됐다. 그나마 이 자금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겨두거나 주식을 판 뒤 찾아가지 않은 돈이어서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적다. 문제는 증권사에서 빚을 내서 투자하는 신용융자 잔고도 이미 17조원대로 한 달 전 16조원대에서 1조원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다. 신용융자잔고는 한 때 18조원에 육박했다가 조금 줄어든 상태다. 증권사 자기자본의 일정 비율만큼만 대출해주도록 되어 있어 증가세에 제동이 걸려서다. 그래도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규모는 최고 수준을 넘나드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상황이 이러니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증시 여건이 좋아져 높아진 지수 상승 기대감에 부응해 랠리가 이어지면 다행이지만 자칫 예상 밖 악재라도 터져서 빚투에 나선 이들이 쪽박을 차는 최악 상황에 몰리지 말란 법이 없어 아슬아슬하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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