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걱정하는 '소·부·장'… 일본은 벌써 7번째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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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11.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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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올 화학상 받은 리튬 이온 배터리, 스마트폰·전기차 생산 핵심부품
전문가 "최소 10년이상 연구 필요 …원천기술, 단기투자론 못 따라가"


지난 7월 4일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부품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한국 산업계 전체가 화들짝 놀랐다. '다음 타깃은 어디냐'는 두려움이 확산됐다. 당시 일본이 칼을 빼면 치명타를 입을 분야 중 하나로 꼽힌 게 스마트폰·전기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였다. LG화학과 삼성SDI가 세계 전기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 시장에서 각각 4, 6위에 오른 배터리 강국 한국은 실은 일본산 핵심 부품·소재가 없으면 생산 라인을 멈춰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100일을 앞둔 지난 9일. 일본의 24명째 노벨 과학상(화학상) 수상자가 하필 리튬 이온 배터리 분야에서 나왔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로는 7번째 수상자인 화학소재 기업 아사히카세이 명예연구원 요시노 아키라(71)였다. 그의 수상 소식은 한국 산업계가 가야 할 극일(克日)의 길이 여전히 멀다는 냉엄한 현실을 다시 일깨워준 뼈아픈 뉴스였다.

일본은 리튬 이온 배터리 주요 핵심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요시노 연구원이 몸담은 아사히카세이는 배터리 분리막 글로벌 1위다. 전기를 일으키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해 리튬 이온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분리막이 시원찮으면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다. 배터리 용량을 좌우하는 양극재는 니치아 화학공업, 음극재는 히타치카세이·스미토모화학이 세계 최강이다. 특히 배터리 파우치(알루미늄 포일로 된 배터리 외장재)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한국의 배터리 3사가 100%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은 일본산 화학소재의 90%를 국산화했지만 핵심 10%는 아직도 만들지 못한다"며 "일부 소재·부품은 격차가 20년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상율 KAIST 화학과 교수는 "기초화학 실력이 없으면 흉내만 낼 뿐 좋은 품질을 구현하기 어려운 게 소재·부품 분야"라며 "최소 10~20년의 기초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 원천 기술에서의 격차를 단기 대규모 투자로 메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재·부품 기술 개발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당시 근대화를 추진하며 기초과학 육성을 부국강병의 첫 목표로 내세웠다. 1960~1970년대 경제호황 시기에는 정부 차원의 기초과학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김창경 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그 결실이 소·부·장 분야 노벨상"이라고 했다. 반도체 연구로 197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에사키 레오나(도쿄통신공업·현 소니), 세계 최초로 청색 LED(발광다이오드)를 개발해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니치아화학공업), 그리고 올해의 요시노까지 일본은 소·부·장 분야에서만 노벨상 수상자를 10명 배출했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도 일본을 소재·부품 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요시노의 경우 1972년 입사해 2015년 고문으로 물러날 때까지 40년 이상을 리튬 이온 배터리 연구에 매진했다. 2002년 기업 연구원으로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도 관리직 승진 대신 연구를 택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기초과학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한국은 나노 기술, 유전공학 등 특정 기술이 뜨면 그 분야로 돈·인력이 우르르 몰려 기초 분야는 소홀히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쏠림 현상이 주기적으로 과학계를 휩쓰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연구자들은 평생을 한 주제에 천착하며 소·부·장의 뿌리를 깊고 넓게 만든 것이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길어야 4~5년인 한국이 일본 같은 소재 강국이 되는 건 꿈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유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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