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도시 게레에 사는 창고 관리인 플로리안 도우는 지난 1일(현지시간) 파리로 향했다. 도우는 400㎞ 떨어진 파리에 갈 기름을 자신의 차에 넣느라 남은 생활비를 거의 다 썼다. 그가 파리로 향한 것은 가난 때문이다. 도우가 한 달 내내 일하고 받는 월급은 생활비도 충당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열흘 전 6달러짜리 소시지 한 팩을 산 후 제대로 된 쇼핑도 하지 못했다. 도우는 끔찍한 가난을 해결해주기는커녕 세금만 인상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에 분노해 파리 ‘노란 조끼’ 시위에 동참했다.
프랑스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파리로 상경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프랑스 농촌 지역에선 대중교통과 편의시설 접근성이 떨어져 차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사는 시민들이 유류세 인상의 직격타를 맞은 셈이다. 스위스 국경지대에 사는 50대 남성 마르코 파반은 “파리 시민들이라면 유류세가 올라도 덜 불편할지 모른다”며 “하지만 나는 산 중턱에 살고 있다. 버스나 기차 같은 대중교통이 없어서 이동하려면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유류세 인상 방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가뜩이나 고물가와 경제난에 지친 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 편다는 비판도 점점 커졌다. 프랑스 북동부 지방 도시 로레인에서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시위에 참가한 샹탈(45)씨는 AFP통신에 “시위대의 폭력은 정당하다”며 “나는 매달 500유로씩 적자가 나서 3년째 휴가도 떠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분노로 프랑스 파리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 일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고급상점과 레스토랑, 은행의 진열창이 산산조각 났다. 일부 상점은 물건을 약탈당했다.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에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노란 조끼가 승리할 것’ ‘우리가 깨어나고 있다’ ‘마크롱 퇴진’ 등의 문구가 적혔다. 파리 중심부 튈르리 공원에서는 시위대를 막으려 세워뒀던 철제 펜스가 넘어지는 바람에 여러 명이 다쳤다.
프랑스 내무부는 1일 시위에 3만6000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3주간 지속된 시위에서 시민 2명이 숨졌다. 시위대 숫자는 첫 주말 11만3000명과 두 번째 주말 5만3000명보다 줄어들었지만 훨씬 더 격렬해졌다. 모두 190여곳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6개 건물이 불에 탔다. 400명이 연행됐고 110명이 다쳤다. 정부는 극좌파 정치세력이 시위에 개입해 폭력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스카프와 방독면으로 얼굴을 가린 시위대들이 “부르주아를 죽여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빈곤과 불평등에 분노했다고 입을 모은다. 유류세 인상 논란은 분노를 촉발시킨 계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이 같은 시위가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폭력시위는 이 같은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예전보다 한층 폭력적이고 격렬해진 시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폭력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시민은 “이런 폭력은 필요악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면서도 “차를 불태우는 것은 하나도 멋지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은 “노란 조끼 시위를 지지하지만 폭력과 엉망진창인 상황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2일 귀국하자마자 총리와 내무장관 등을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프랑스 정부는 추가 폭력 사태에 대비해 주요 도시의 경비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검토 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27일 국제유가 변동 추이를 고려해 유류세 인상 시기와 폭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상 계획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짐 쉴즈 영국 워릭대학교 프랑스 정치학 교수는 블룸버그통신에 “노란 조끼 시위는 곧 잠잠해지겠지만 시위대의 빈곤에 대한 분노는 새로운 형태로 계속 마크롱 대통령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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