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사 총파업 날 공보의 휴가 반려, '의대 유치' 위해선 청원 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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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8.19. 오후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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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설립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목포시의 공문.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양미정 기자]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는 공무원법과 병역법에 모두 저촉된다. 정부, 지자체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 의사, 군인, 공무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존재다.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의사는 ‘공공재’라고 했는데 공보의는 오죽할까. 공공재라 추가수당은 없고 공무원이라 파업 등 정치적 활동은 금지된다. 군인이라는 명목으로 주말 파견은 당연하고 거부하면 탈영이다. 그런데 이번엔 공공의대 유치를 위해 청와대 서명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전남 동부권 공보의로 활동 중인 A씨는 지난 14일에 열린 의사 총파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전국 지자체가 의사에 한해(치과·한의사 제외) 휴가와 병가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의심환자도 마찬가지다. 근무지 이탈은 탈영으로 인정해 연장근무·감봉 등의 징계처분을 받으니 심적 부담이 있다. 지자체는 군인이라는 신분을 악용해 당일 ‘수재민 복구시설에 투입하겠다’는 명분으로 3시간의 연장근무를 강요했다. 그러나 ‘환자가 많이 오지 않았다’며 수당은 지급하지 않았다. 연장근무를 해야 하는 적절한 근거 없이 그날 공보의들을 근무지에 묶어둔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이 코로나 선별 진료소에서 서명 등록을 요구하고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같은 날 전남의 한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했던 전남 서부권 소속 공보의 B씨는 근무지에서 목포시장 직인이 인쇄된 한 공문을 보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공문은 ‘목포대 의과대학 및 부속병원 설립을 위한 국민청원에 동의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담당 공무원들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한 노인과 학생, 어린이들에게도 서명을 요구했다. B씨는 “지자체와 정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목포시 의대 유치를 위해 힘쓰는 모습이 눈물겨웠다”고 비꼬았다.

새올행정알림파일.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동의 방법.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목포시는 공무원 전체에도 서명을 요청했다. 새올행정시스템이라는 공무원(경찰관, 소방관 제외) 전용 인트라넷에 접속하면 ‘목포대 의대 신설 청원에 동참해달라’는 팝업창이 등장한다. 의대 유치는 전라남도의 30년 숙원사업 중 하나인데 정부와 여당이 10년간 의대 정원 4000명 증원을 확정·발표함에 따라 의대가 없는 이곳은 이미 의대 신설이 확정된 듯한 분위기다. 목포시 곳곳에 이런 내용을 담은 플랜카드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왼쪽부터) 목포 의대 유치 관련 현수막 문구와 실제 현수막.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지자체 관계자들은 관련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한 자료에 따르면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의과대학이 없는 전라남도에 의과대학 설립이 사실상 확정됐다. 200만 도민과 함께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고 김종식 목포 시장은 “전남지역 의대 설립에 힘써주신 정부, 더불어민주당, 전남도, 김원이 국회의원께 감사드린다. 의과대학 설립은 건강기본권 뿐만 아니라 인구 유입, 사회적 비용 절감 등 지역발전과도 밀접한 사안으로 목포대학교, 전남 서남권 주민과 함께 의대 설립의 의지를 더욱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간절한 목포몽(夢)을 실현하기 위해 시 관계자는 공공의대 관련 설문조사에 참여해달라는 공문을 인트라넷에 올렸다. 붉은색 굵은 글씨로 “의사협회 쪽에서 조직적으로 참여해 반대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설문조사와 ▲댓글로 의견을 남겨야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시장님께서도 직원분들과 가족, 시민이 꼭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는 내용도 담았다.

목포시 공지사항. ‘의사협회 쪽에서 조직적으로 참여해 반대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님께서도 직원과 가족, 시민이 꼭 참여하라고 당부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이에 김형갑 공보의협의회장은 “목포시가 지나치게 민감한 대응을 하고 있다. 여론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이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인지 생각해볼 문제”라며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에 공무원 서명 동참 강요, ‘의사협회가 반대여론을 형성한다’는 문서를 발송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보의협의회 차원의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남의사회는 구체적 계획 없이 3000억여원 혈세가 필요한 의대 신설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지자체가 전남지역 의대 신설을 포함해 의사 증원을 밀어붙인다면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이필수 전남의사회장은 “단지 전남지역에 의과대학이 없다는 이유로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며 비합리적인 정책을 강행한다면 국민과 의료계의 강력한 저항과 민심이반을 가져올 것”이라며 “전남지역 의대 신설 논의가 철회될 때까지 의사회는 지역 내 의과대학생, 전공의 등과 연대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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