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로 결박된 뼈' 발견하고도 모른척…경찰 사체은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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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2.17.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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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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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사건 당시 경찰, 살해 초등생 시신 유기하고 '단순 실종' 처리

한 맺힌 유족 가슴에 대못 박아…시신 찾기 사실상 불가능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류수현 기자 =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이 한창이던 1980년 말 화성 태안읍에서 발생한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당시 경찰 수사관들이 숨진 피해자의 시신을 은닉한 혐의로 입건돼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경찰이 죄 없는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한 뒤 구타와 가혹행위를 해 숨지게 한 사례 등은 여러 차례 알려진 바 있으나, 사건 피해자의 시신을 숨기는 등 증거인멸에 적극적으로 나선 정황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화성 초등생 사건 (CG)[연합뉴스TV 제공]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담당 형사계장 A 씨와 형사 B 씨를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A 씨 등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 30분께 화성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인 김모(8) 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사건과 관련, 김 양의 시신을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김 양의 유류품 발견 신고일인 같은 해 12월 21일부터 김 양의 아버지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12월 25일 사이에 김 양의 시신을 발견한 이후 일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수사본부는 이춘재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이춘재가 김 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는 자백과 함께 "범행 당시 양 손목을 줄넘기로 결박했다"는 진술을 확보, 30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섰다.

이어 지역 주민으로부터 "1989년 초겨울 A 씨와 야산 수색 중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당시 A 씨 등이 단순히 안일하게 사건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증거인멸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조사해왔다.

위령재 참석한 화성실종초등생 유가족[연합뉴스 자료사진]


수사본부는 당시 경찰이 김 양의 아버지와 사촌 언니 참고인 조사에서 김 양의 줄넘기에 대해 질문한 것이 확인되고, 사건 발생 5개월 뒤 인근에서 김 양의 유류품이 발견됐는데도 알리지 않은 사실 등을 종합할 때 A 씨 등에 대한 혐의가 상당하다고 판단, 입건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당시 김 양의 아버지가 두 차례에 걸쳐 수사 요청을 했으나, 경찰이 이를 묵살하고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한 것으로 지금껏 알려져 왔다.

성폭행·살해 피해를 본 여자 초등학생의 시신에 경찰이 손을 댔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관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는 등 여러 엇갈린 진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 사건과 관련,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 의혹은 8차 사건 재심청구인인 윤모(52) 씨로부터 제기되는 등 죄 없이 붙잡혀 고초를 겪은 여러 피해자의 진술로 확인된 바 있으나, 증거인멸 행위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사본부는 지난달 1일부터 9일까지 이춘재가 자백한 김 양 시신 유기 장소 인근인 화성시의 한 공원에 대해 대대적인 유골 수색 작업을 펼친 바 있다.

이제는 70대 후반의 백발노인이 된 김 양 아버지는 수색 현장을 찾아 딸의 원혼을 달래면서 "자식을 잃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원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수사본부의 발표대로 A 씨 등이 시신을 유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김 양 유족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은 것이 된다. 아울러 수사본부의 유골 수색 작업도 모두 헛수고였던 셈이다.

화성 초등생 사건 유골 수색 [연합뉴스 자료사진]


A 씨 등이 김 양의 시신을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등에 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사건 현장 인근이 토지 개발 등으로 깎여 나가는 등 크게 바뀌어 추가 유골 수색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다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수사는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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