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아내는 공황장애에 우울증이며, 두 아이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 사정이 어렵다’고 밝히며 다른 회원들에게 소액이라도 좋으니 후원을 부탁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타깝다’는 반응은 있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10일 뒤 A씨가 올린 두 번째 글로 인해 회원들의 ‘분노’와 ‘측은지심’이 폭발했다. A씨의 두 번째 게시글에 따르면 밀린 3개월치 월세와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보배드림 회원 B씨를 만났는데, 정작 B씨는 A씨의 자녀들을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 있는 택배 상자를 보내며 ‘가족끼리 맛있게 나눠 드세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씨의 ‘음식물 쓰레기 택배’ 사연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보배드림 운영진이 "A씨와 B씨의 IP주소가 일치하니 더 이상 A씨의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지 말라"고 공지한 게 계기가 됐다.
IP 주소는 온라인에서 개별 컴퓨터를 구분하는 고유번호로, 이 두 주소가 같다는 것은 A씨와 B씨가 같은 사람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A씨도 결국 해명글을 통해 ‘음식물 쓰레기 택배’ 글은 각색해서 쓴 게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뒤늦은 A씨의 해명을 믿는 네티즌은 거의 없었고, 현재 A씨에게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은 민·형사상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이 같은 허위 게시물을 '주작질' 또는 '주작'이라고 표현한다.
전문가들은 A씨 글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자극한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으로서의 공감대와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 우리의 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심정적·감성적 차원에서 같은 남성으로서의 감정이 공유된 것”이라며 “남성 가장들이 최근 매우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정서적으로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분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가 제일 억울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점에 감동이 일어나 더 공감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기부와 달리, 돈이 어디에 사용될지 분명하니까 오히려 더 기부가 촉진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배드림 운영진은 현재 A씨에게 이른바 ‘후원 사기’를 당한 사람들을 모아 민·형사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온라인 게시글 등에 따르면 A씨는 후원받은 돈을 일부 네티즌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 네티즌 및 정보를 만들어내는 주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도 윤리를 지키고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진실에 가까운 콘텐츠가 나오는 자정작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편광현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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