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때문에 폐암 사망한 유 대위…“국방부 문책” 청원

입력
수정2018.04.04. 오후 3:50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보호 장비를 지급받지 못한 채 기준치의 5배가 넘는 석면에 노출됐던 유호철 대위가 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나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네티즌들은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공무로 생긴 질병이 아니라며 공상 처리를 해주지 않은 국방부를 문책해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1일 올라온 유 대위 관련 청원. 이 청원에는 4일 오전까지 2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고 유호철 대위는 2014년 8월 기침과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결론은 폐암4기. 눈 앞이 깜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폐암에 걸릴만한 이유가 없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조부모까지 찾아봐도 폐암 가족력이 없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석면이었다. 군 건물 천장과 벽 내장재에는 석면이 많이 쓰인다. 석면은 폐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져 세계보건기구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면이 1% 이상 들어간 건축물은 철거하게 돼 있다.

그런데 유 대위는 2008년 통신병과 소위로 임관해 폐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7년 가까이 석면 구덩이에서 작업을 했다. 일주일에 많게는 5회까지 석면이 들어간 천장 마감재를 뜯고 전기선, 통신선을 설치하거나 보수했다. 노후한 마감재는 살짝 건드려도 석면 먼지를 뿜어댔지만 유 대위는 군으로부터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어떤 교육도, 보호장비도 받지 못했다. 자비로 산 일반 마스크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전부였다.

2015년 1월 의병 전역한 유 대위는 업무로 인해 얻은 폐암이므로 상이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국방부 군인연금급여심의회는 지급을 거부했다.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은 보통 10년 이상 잠복기를 거치는데 유 대위의 경우 기간이 짧다는 이유였다. 평소 건강했고, 폐암 가족력이 없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유 대위의 주장은 정확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이 때부터 국방부와 유 대위의 싸움이 시작됐다. 항암치료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유 대위는 근무했던 부대 건물의 천장 마감재를 수집하고, 관련 연구자료를 찾아 다녔다. 소송에서 국방부는 2007년부터 석면 관리 대책을 세웠고 2010년에는 ‘군 건축물 석면 함유 실태 전수조사 시범사업’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씨는 복무기간 중 한 번도 관련 자료를 보거나 석면 실태를 조사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유 대위가 일했던 건물 천장에서 석면 함유량이 5%(법정 기준치 1%)나 검출된 것을 이유로 유 대위의 손을 들어줬다. 2년 9개월만의 힘겨운 승리였다. 하지만 유 대위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달 26일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 살 된 아들과 부인은 눈물로 젊은 가장을 떠나 보내야 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다. 유 대위가 폐암을 앓게 된 원인이 군 건물의 석면인 것이 분명한 데도 발뺌을 했던 국방부에 분노가 집중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 유호철 대위님을 죽음으로 몬 국방부를 문책합니다’라는 청원이 1일 등록됐다. 청원인은 석면 관리를 소홀히 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국방부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엄격한 석면 규제 ▲국방부 내부수사 투명화 ▲석면 관련 병사 처우 개선 등도 주문했다. 4일 현재 이 청원에는 2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한국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친구맺기]
네이버 채널에서 한국일보를 구독하세요!


[ⓒ 한국일보(hankookilbo.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