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못살리고 측근부패까지…보우소나루 우파개혁 좌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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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16. 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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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정부 교육개혁에 반기
전국 200여곳서 대규모 시위
연금·노동개혁도 반발 부딪혀

헤알화값 하락…성장률도 뚝
지지율 32%로 역대 최저수준


높은 실업률과 공공부채로 허덕이는 브라질을 '우파개혁'을 통해 바꿔 놓겠다는 야심 찬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남미의 도널드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개혁 노선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돼 교육, 노동, 연금 등 그가 내세운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또 대통령 주변 인물에 대한 부패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정치적 역량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신생 정권의 국정동력이 바닥을 보이자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성장률도 급락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이 미치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등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 등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브라질 27개주 20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됐으며 시위대 측은 전국적으로 1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경찰이 최루가스 등을 쏘며 해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15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벌어진 반정부시위 현장에서 군경 특수부대원들이 불타는 시내 버스와 시위대를 뒤로하고 경계를 실시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
시위는 브라질 최대 학생단체인 전국학생연합(UNE)을 포함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앞서 교육부가 연방대학 운영에 들어가는 지출과 기초연구 분야 예산 등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예산 증액을 감안하면 교육예산에서 30%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는 학생과 교수 7000명이 이를 반대하며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투자 없이는 지식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시위는 이후 시민단체, 좌파 정당, 노동계 등이 가세하며 더욱 격해졌다.

이번 시위를 두고 지난 1월 1일 취임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현상이라는 분석이 일고 있다. 마리안나 디아스 UNE 회장은 "오늘은 보우소나루에 대한 대규모 반발의 첫걸음"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연금 개혁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파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표방하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만한 운영으로 정부 재정에 악영향을 끼쳐온 연금·건강보험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브라질은 연간 국가예산의 33% 이상을 연금 지출로 쓰고 있다. 연금 최소 수급 연령을 늦추고 납부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 개혁안은 지난달 제출돼 하원에 계류돼 있다. 그러나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현지 여론조사 업체 '데이터폴하'에 따르면 응답자 중 51%가 정부 개혁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은 41%로 조사됐다. 노동계는 개혁안이 하원 전체회의로 넘겨지는 다음달 14일을 전후로 총파업에 나설 것을 예고하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맞닥뜨린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당선 때 주장했던 '깨끗한 정부'도 부메랑이 돼 국정 수행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측근 부패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선거운동 당시 그는 13년간 집권했던 좌파 노동자당(PT)의 약점인 부패 정당 이미지를 강력히 비판하며 세몰이를 했다. PT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지우마 호세프·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 등 지도자 세 명 모두가 부패 혐의로 수감됐거나 재판 중이다. 이 와중에 지난해 말 보우소나루 대통령 장남이자 상원의원인 플라비우 의원이 수상한 자금 거래에 관련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2월에는 선거자금 유용 의혹에 휘말린 핵심 측근 구스타부 베비아누 보좌관을 해고하기도 했다.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안겨줬던 거친 행동과 언사도 독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번 시위 동안 미국을 방문 중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시위대를 가리켜 "선동된 군중이자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한 것이 알려져 시위 분위기를 더욱 격화시켰다. 3월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카니발 축제 기간에 촬영된 음란 동영상을 올려 논란이 됐다.

독선적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대선 후보 시절과 변함없는 강경 일변도 정치가 국정 수행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정당인 사회자유당(PSL)은 하원 전체 513석 중 52석(약 11%)만 차지하고 있다. PSL은 하원 과반에 필요한 연합을 구성하기 위해 13개 정당과 손잡아 다른 정당들과 타협이 특히 중요하다. 현지 매체 리오타임스는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 어울리는 직무적합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부진한 경제지표도 신생 정권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브라질 경제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실업 문제와 공공부채 부문에 대한 지표는 최근 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난 1분기 브라질 실업률은 12.7%로 전 분기 대비 오히려 올랐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54.13%를 기록하며 여전히 남미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기대심리가 작용해 상승했던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연일 떨어지고 있다. 1월 31일 달러당 3.65헤알까지 올랐던 헤알화는 가치가 연이어 떨어지면서 이날 달러당 4.01헤알을 기록했다. 경제 성장률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브라질에 공공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공공지출 축소 등을 강조하며 올해 경제성장률을 3개월 전보다 0.4% 낮춘 2.1%로 제시했다.

정치·경제적으로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은 하락 일로다. 지난달 현지 업체 다타폴랴가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이해 발표한 정부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 32%, 보통 33%, 부정 30%로 조사됐다. 다타폴랴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정권은 1985년 군부 정권에서 벗어난 후 취임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긍정 평가와 가장 높은 부정 평가를 동시에 기록했다. 다타폴랴는 새 행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매체 '더내셔널인터레스트'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핵심 지지층 기독교 복음주의자의 지지율이 지난해 70%에서 최근 40%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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