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혀꼬인 부장님의 전화 "똑바로 하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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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15. 오후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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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직장인 72% "달라진 것 없다"

“선임이 매번 ‘네가 하는 건 다 마음에 안 든다’며 ‘××’이라고 대놓고 욕설을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욕을 들을 때마다 일기에 적어놓고만 있습니다.”(직장인 A씨)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직원에게 ‘일도 못하는 ×’이라며 욕설을 하는 일이 최근에도 직장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법 자체가 무엇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지 모호한 측면이 있는 데다,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어 현장에서 잘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72%, ‘달라진 것 없어’
정부는 2018년 7월 ‘직장에서의 괴롭힘 근절 대책’을 발표했고, 국회는 그해 12월 관련 내용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작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는데, 이 개정 내용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라고 부른다.

15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가 공동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1주년 토론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72%가 ‘없다’고 답했다. ‘줄었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고, ‘늘었다’는 응답도 8%나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최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5%가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언, 욕설, 폭행 등 종류 다양
제도 시행 후 지난 5월까지 고용노동부엔 총 4066건의 정식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이 중 형사 처벌돼 검찰에 송치된 것은 40건으로 전체의 1%에 그친다. 1718건(42%)은 신고를 취소했고, 1232건(30%)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이거나 법 시행 전 일어난 일이라 종결 처리됐다.

/조선일보 DB


근로 현장에선 다양한 괴롭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0)씨는 “올해 초 술에 취한 부장이 새벽 1시쯤 전화해 ‘그 따위로 하면 안 된다’ ‘똑바로 하라’ 등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김씨는 “다음 날 부장이 ‘술자리에서 우연히 당신의 업무 실수를 듣게 돼 충동적으로 그랬다’고 했지만 충격을 받아 잊히지가 않는다”고 했다.

지방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이모(여·29)씨는 매일 아침 출근해 고무장갑을 끼고 사무실 책상과 선반, 의자 등을 걸레로 닦았다. 상사가 “사무실이 더럽다”며 여러 번 혼을 냈기 때문이다. 이씨는 “청소원이 따로 있는데도 여자인 나한테 ‘화장실이 더럽다’며 남자화장실 청소까지 시켰다”고 했다. 정해진 업무와 상관없는 지시를 한 것이다.

기준 모호하고, 처벌 규정 없어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등을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만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2월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행위’ 등 50가지 사례를 추가 예시로 공개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까지를 괴롭힘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접적인 처벌 규정을 두지는 않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는 대신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예방과 징계를 취업규칙에 넣도록 의무화했다. 사업장 자율에 맡긴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구제 방법이 뚜렷이 없다고 느낄 때 가장 괴롭다”고 말한다. 김태호 한국노동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뿐 아니라 근무 의욕 저하, 이직률 증가 등 조직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곽래건 기자 rae@chosun.com]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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