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박종아, 기적을 만드는 기적 같은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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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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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기적 같은 스포츠 종목이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과 실업, 프로에 이르기까지 정식 팀이 한 곳도 없음에도 ‘선수’가 존재하는 종목, 여자 아이스하키입니다.

비인기종목이라는 표현도 무색할 만큼, 그야말로 기적 같은 존재인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또 다른 기적을 향해 가고 있는데요.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가는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그 중심에 있는 최연소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인 박종아 선수를 만나보았습니다.




취미로 스틱을 잡은
여덟 살 소녀



여느 종목은 모든 경기가 끝난 후 1위 나라의 국가(國歌)가 연주됩니다. 한데 아이스하키는 조금 이색적인데요.

온몸이 부서질 듯한 보디체크(몸싸움), 최대 160km에 달하는 퍽의 속도, 1~2분 간격으로 선수를 교체할 만큼 고강도 체력 소모 등 아이스하키는 매 순간 선수의 기량과 체력을 남김없이 쏟아붓습니다. 때문에 국제대회에서는 매번 경기가 끝날 때마다 이긴 팀의 국가를 연주해 선수들에게 경의와 축하를 표하죠.





이렇게 종목 자체도 힘든 데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심과 지원이 매우 부족한 터라 자녀에게 아이스하키를 권하는 부모가 드뭅니다. 박종아 선수의 부모는 딸아이의 내성적인 성격에 도움이 될까 싶어 취미 삼아 아이스하키를 권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내성적이고 이기적이었어요. 엄마는 단체 운동을 하면 제 성격이 바뀔까 싶어 아이스하키를 시키셨죠. 여덟 살에 고향인 강릉 유소년 클럽에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는데, 저를 눈여겨보신 감독님 추천으로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나가게 됐어요.”




열다섯 살의
외로운 국가대표


열다섯 살 박종아 선수는 그렇게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국가 대표에 선발된 기쁨도 잠시, 가족이 있는 강릉을 떠나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홀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악착같이 버텼죠. 우리나라 여자 아이스하키 학교팀이 전무합니다. 박종아 선수는 국가대표팀, 클럽팀, 남자학교팀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부모 밑에서 한창 보살핌 받을 나이에 아이는 스스로를 챙기며 운동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듣는 사람 코끝이 찡해오는데 정작 과거를 회상하는 박종아 선수는 담담합니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낮에는 학교,
오후에는 훈련장을 오가다 보니
운동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었거든요.
운동 여건이 잘 갖춰진 나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열여덟,
더 넓은 무대에서 성장하다


그 즈음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동계올림픽을 겨냥해 유망주 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박종아 선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다시금 혼자 캐나다 국제 하키 아카데미(CIHA)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10년의 국가대표 경력이 있었지만, 아이스하키 강국인 캐나다에 가자 스틱을 처음 잡을 때처럼 모든 게 낯설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매주 열리는 경기는 반가우면서도 버거웠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상대할 팀이 없어 남자팀이나 클럽팀과 연습경기를 했지만, 캐나다에서는 또래 여자팀과 실력을 겨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대표팀 외에
여자아이스하키팀이 한 곳도 없어서
경기보다는 기본기 훈련에 집중했었죠.

캐나다에서는 수시로 경기가 열렸어요.
처음엔 긴장도 많이 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캐나다 선수들을 보니
승패를 떠나 경기 자체를
자유롭게 즐기더라고요.
경험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걸 배웠죠.


한국에서 쌓은 기본기에 캐나다에서 익힌 실전 경험이 더해지자 박종아 선수의 기량은 가파른 상승세를 그렸습니다. 캐나다 주니어리그에서 두 시즌을 마쳤을 땐 아이스하키 명문 대학들이 그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왔죠.

캐나다 서스캐처원대학교와 UBC대학교를 비롯해 미국 아이비리그 브라운대학교에서도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의 우선 순위는 아이스하키. 가장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서스캐처원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열아홉,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다


2015년 박종아 선수는 대학 새내기라는 타이틀을 잠시 미루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일찌감치 전열을 정비한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서였죠.




다시 찾은 국가대표팀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새라 머레이 감독을 필두로 박은정, 임진경, 박윤정, 랜디 희수 그리핀 등 교포 선수를 적극 영입해 선수층을 강화했고, 훈련장도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 새롭게 마련됐습니다.

여기에 박종아 선수까지 가세한 국가대표팀은 전에 없던 기록을 쌓아 올리고 있는데요.

지난 2월에 열린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역대 전적 15전 15패였던 대만을 상대로 20-0이라는 압승을 거뒀습니다. 이전 4차례 아시안게임에서 242점을 내주며 15전 전패의 참담함을 삼켜야 했던 지난날을 말끔히 털어냈죠.

중국과의 경기에서는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동계아시안게임 종합 4위에 올랐습니다. 

만 아니라 여자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 속한 5개 팀을 모두 이기며 디비전1 B그룹(3부 리그)으로 승격했습니다. 참고로 세계 여자 아이스하키는 실력에 따라 6부 리그로 나뉘며 리그 승격을 위해서는 현재 속한 리그에서 1등을 해야 합니다.

매 경기가 드라마 같았던 순간에 박종아 선수는 주인공이 돼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중국전에서는 동점골과 슛아웃을 성공시켰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 포인트 랭킹 2위(4골, 6어시스트)에 오를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최연소 주장 박종아 선수는 드라마를 만든 주인공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스하키는 혼자만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에요.
선수 간 팀워크와 믿음이 중요한 팀 경기죠.
우리팀이 쌓아가는 성적에는
동료와 스태프 모두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녀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



2017샷포로동계아시안게임 4차전, 우리나라와 중국은 3피리어드 60분간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쳤지만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연장전에 이어 슛아웃에 들어간 양 팀은 아홉 번째 슈터까지 이어지는 접전을 거듭했고, 중국의 열 번째 슈터의 골을 골리(골키퍼) 신소정 선수가 막아냈죠.




다시 없는 기회인 동시에 막중한 부담을 짊어진 우리나라 열 번째 슈터 박종아 선수. 하프라인 너머부터 골대 직전까지 퍽을 몰고온 그녀는 골리와의 정면승부에서 과감하게 슛을 날렸고 퍽은 그물망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수들은 얼싸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역대 전적 7전 7패였던 중국을 아시안게임에서 이긴 역사적인 순간, 박종아 선수는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15살 때 국가대표로 선발돼
처음 참가한 국제대회가
아시아 챌린지컵이었어요.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봤는데
중국과의 경기를 보며
무척 놀랐었죠. 
큰 점수 차로 우리팀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 중국팀을 이겨보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8년이 후 중국팀을 이겼잖아요.
저에겐 평생 잊지 못할 경기예요.


박종아 선수는 경기장에 설 때면 아직도 두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할 때 그녀는 속삭입니다. “할 수 있어!” 

8살 처음 얼음판 위에 섰을 때도, 15살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도, 18살 홀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그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박종아 선수. 동메달을 목표로 영하의 빙상장에서 뜨거운 숨을 연신 몰아쉬며 지금도 그녀는 ‘할 수 있다’고 자신과 동료에게 속삭입니다.

이제 그녀의 속삭임이 우리의 외침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박종아 선수가 들을 수 있도록 목청껏 외쳐봅니다.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공단 사보 '국민체육21' 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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