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방치된 정신질환자…가족들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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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정신질환자 범죄①] 정신질환자 관리, 국가 지원 필요
지난달 28일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는 이모(42)씨가 오전 4시쯤 경기 수원시 권선구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68)와 누나(48)를 목졸라 살해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스스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 조사에서 “환청을 듣고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구로구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지모(54)씨가 80대 노모를 주먹과 발로 폭행해 숨지게 했다. 지씨는 경찰 조사에서 “몸 안에 어머니의 혼령이 들어와 어머니를 때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가족 살해와 흉기 난동 등 패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서울 대형병원에서 조울증 치료 전력이 있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린 의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인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과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가족들의 보호가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의 공격성을 예방하기 위한 꾸준한 치료와 관리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치된 정신질환자 범죄 해마다 증가…가족들 불안감 더욱 커져

지난달 26일 수원시 영통구에서는 지난해부터 피해망상증으로 정신질환을 치료를 받아온 김모(24)씨가 외할머니(76)와 어머니(50), 여동생(20)에게 흉기를 휘둘러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목 등을 크게 다쳤고, 여동생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김씨는 “감시받는 기분이 들어 여동생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던졌는데, 외할머니가 야단치자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정신질환자 범죄의 증가는 실제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정신이상·정신박약·우울증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2015년 6980건 △2016년 8287건 △2017년 9027건으로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재범률은 △2015년 64.2% △2016년 64.3% △2017년 66.3%로 같은 기간 전체 범죄자 재범률(△2015년 47.2% △2016년 47.3% △2017년 46.7%)보다 최대 20%P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이 심해져 실제 범죄 행위로 이어지기 전에 제대로 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방치된 정신질환자와 동거하는 가족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공개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5만4152명 중 퇴원한 지 한 달 안에 한 번이라도 정신과에 들러 진료를 받은 환자는 3만4304명(63.3%)에 불과했다.

◆정신병원 찾기 꺼리는 분위기…관리 인력·예산 시스템 부족도 문제

정신질환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흔한 질병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있어 조기에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범죄 발생의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울증·불안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도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 정신질환자를 지속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력·예산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꼽힌다. 정신질환자 관리를 가족의 책임으로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243개 기초·광역 정신건강센터에 등록된 관리 대상 환자는 6만1220명에 달하지만, 전체 근무자는 2524명에 불과하다. 또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발행한 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 회원 통계에 따르면 사회복지사 1명당 100명 이상 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자치구가 여전히 많다. 이처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신질환자 관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도 선진국에 비해 훨씬 부족하다. 복지부에서 발행한 2018년 정신건강사업 안내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영국은 1인당 정신보건지출에 278달러를 지원했지만, 한국은 45달러에 불과해 6배 넘는 차이를 보였다.

◆전문가들 “책임, 가족에게 국한되면 안 돼…국가의 지원 뒷받침돼야”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치료와 관리를 받고 범죄 행동으로 발전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그 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직접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만우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장은 지난해 8월 ‘정신질환자 범죄 예방 및 치료 지원을 위한 정책방안’ 보고서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 예방 및 치료 지원을 위해서는 미치료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신질환자들이 발병 즉시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입·퇴원의 반복적 수용 방식이 아닌) 지역사회 정신보건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재구축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외래치료 명령을 받은 정신질환자가 전적으로 보호자의 부담과 책임에 의해 강제적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자의 성실한 돌봄이 결여된다면 환자가 제대로 지역사회에서 치료지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본인 또는 가족 책임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책임에 의해 제도가 운영되고 그 수준에서 전달체계가 재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조현병학회는 앞서 지난해 7월 경북 영양군에서 발생한 조현병 환자의 경찰 살해 사건 이후 성명을 내고 “조현병 환자의 입원을 제한하고 퇴원을 촉진하고자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인해 반드시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마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퇴원 이후에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를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가 모두 떠안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현병 환자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고 돕기 위해서는 국가적 관심과 재정 확대뿐 아니라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이 절실하다”며 적절한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재정적 지원으로 조현병 환자의 공격성을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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