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는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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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10. 오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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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장재연 아주대 교수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최고 한국에 깨끗한 공기는 욕심”

대책은 대중교통 이용, 노후 석탄 발전소 폐쇄 등 오염원 감소뿐


6일 오후 세종로 사거리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수도권 내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노후 경유차 서울 운행 단속), 마스크 착용 등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요란한 알람과 함께 휴대전화가 떨린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을 알리는 ‘경고’다. 일곱 번째다. 우울했다. 무려 일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2017년 제도가 시행된 뒤 처음이다. 방송에선 한반도와 중국 대륙 동부 일부를 가득 덮고 있는 붉은 구름이 꾸물댄다.

<마스크 쓰지 말라는 ‘미세먼지 전문가’>

미세먼지 앞에 인간은 평등했다. 마치 ‘군대’ 같았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학력이 높아도 피할 수 없다. 미세먼지 섞인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시지 않을 방법은 없다. 폭염이 왔을 땐, 돈이 많으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이 오염됐을 땐 비싼 돈 주고 빙하 녹은 물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파는 가게는 없다.

다급해진 정부는 국민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일부 언론은 마스크도 비싸서 못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정부가 지원하라고 압박했다.

그런데 온 사회가 미세먼지로 들썩이는 이 순간 “웬만하면 마스크를 쓰지 마라”고 하는 ‘미세먼지 전문가’가 있다.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다. 장 대표는 1985년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시의 대기오염을 연구한 것을 계기로 미세먼지 연구에 뛰어들었다. 미세먼지 경보가 울리면 장 대표는 분주해진다. 수많은 언론이 그에게 자문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항상 논란에 휩싸인다. “한반도 미세먼지는 ‘중국의 영향’으로 근래에 ‘증가’했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제1007호 ‘월드컵 때 더 마셨노라’ 참조). 그는 말한다. “미세먼지는 줄었고, 중국의 영향은 크지 않으며, 마스크는 안 써도 된다”고.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3월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숲과나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만나 미세먼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류우종 기자.
<한겨레21>은 최근 ‘학자적 양심’까지 걸고 미세먼지 인식 바꾸기에 나선 장 대표를 3월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숲과나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상위권인 한국이 깨끗한 공기를 원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다”며 “국내 미세먼지 오염원을 줄이는 동시에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함께 줄여나갈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영향을 강조하며 국내 미세먼지 감소 노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분위기를 꼬집은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세계에서 12번째로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6번째였다.

7일 동안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계속된 건 처음이다.

최근 10년 안에 이렇게 공기가 나빴던 적이 없었다.

지난 일주일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기상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대기가 정체해도 3~4일이면 움직이는데, 이번엔 꼼짝을 안 했다.

미세먼지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말해왔는데 올해는 다시 나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미세먼지 농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영향을 미치는데 ‘오염물’과 ‘기상 조건’이다. 보통 오염물 배출이 두 배 늘면 미세먼지 농도도 두 배로 비례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기상 조건은 좀더 다이내믹하다. 대기가 정체되니 미세먼지 농도가 다섯 배 이상 훌쩍 뛰었다. 기상 조건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미세먼지와 관련해 할 수 있는 건 오염물 배출량을 줄이는 것뿐이다.

미세먼지 가득한 베이징 시내 모습. 연합뉴스


<중국이 40% 줄일 때 우리는>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졌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도 일반 시민 처지에선 공감하기 힘들다.

최근 들어 줄어드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보다 많이 낮아진 것은 팩트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사실을 언급했던 이유를 헷갈리는 분들이 있다. 나는 “현재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보다 낮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미세먼지) 문제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일부 언론이 여전히 과거에 없던 중국의 미세먼지가 날아와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주 오래된 문제인 미세먼지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다. 대체로 오염물을 줄이는 정책을 펴면, 미세먼지 농도도 그에 따라 정직하게 줄어왔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 농도 감소가 더뎌진 것은 어떤 이유인가.

큰 오염원들은 차단했지만, 작고 다양한 오염원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세먼지를 더 줄이려면 더 많은 오염원을 잡아야 한다. 과거 수도권 미세먼지 대책을 세울 때 오염물 배출 업소 중 규모가 큰 곳을 먼저 관리했다. 중소 업체는 저감시설을 설치하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효율적인 미세먼지 감소를 위해 큰 배출원을 먼저 컨트롤했다.

자동차도 그런 맥락에서 경유차를 먼저 규제했다. 휘발유차는 규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휘발유차라고 해서 미세먼지를 내뿜지 않는 게 아니다. 질소산화물 같은 미세먼지 원인 물질을 배출한다. 마모되는 자동차 타이어도 주요한 미세먼지 오염원이다. 이륜차(오토바이)나 선박도 아예 규제하지 않는다. 대기 중에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규제를 확대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한국이 깨끗한 공기를 갖겠다는 건 과욕이다.

일부에선 중국 영향이 크다고 보고, 국내에서 아무리 미세먼지를 줄여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환경부가 고농도 때 한국의 미세먼지 중 80%가 중국 영향이라고 주장하는데 국제 학술지에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다.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서풍이 불어서 중국 대륙의 미세먼지를 가져온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어떻게 중국에서 불어온 바람이 딱 한반도에서 멈춰 설 수 있는가. 대신 중국이 5년 동안 미세먼지를 40% 줄였다는 건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중국의 미세먼지가 40% 줄었다면 중국 영향을 80%나 받는 한국은 10%라도 줄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차량 2부제 하면 부자는 2대 탈 것>

2019년 3월5일 에어비주얼 미세먼지 상황 화면 갈무리.
위성사진에 나오는 빨간 미세먼지 구름을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방송에 자주 나오니까 인공위성에서 찍은 실시간 대기 현황 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위성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다. 모델링 해서 그래픽 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위성으로 미세먼지를 찍는 기술은 아직 없다.

연구기관이 신뢰를 바탕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언론에서 자주 보여주니까 실시간 위성사진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림만 보면 그럴듯하다. 마치 중국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해상에 미세먼지가 많이 떠 있다고 해서 중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 공조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부 여론이 현재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이야기를 못한다고 하는데 그 반대다. 학술적 데이터도 없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까지 모두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일본에서 오늘부터 ‘서풍으로 한반도 미세먼지가 일본에 온다’고 주장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박근혜 정부 때부터 미세먼지의 원인을 중국에서 찾았는데,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됐다. 이제는 좀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다.

현재 정부의 미세먼지 정책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다.

거의 포기했다. 초반에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노후 석탄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최근 이야기를 보면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정부가 세운 대책을 부정하고 있다.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니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정책 실패를 감추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

비상저감조치 때 하는 일시적인 2부제는 반대해왔다. 하지만 상시 2부제는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

차량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차량 2부제는 아니다. 상시로 2부제를 운영하면 돈 있는 사람이 차량번호 끝자리를 ‘홀짝’으로 두 대 사서 끌고 다닐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질적으로 승용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더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금을 써야 한다. 본질적인 대책은 두고, 국민에게 차를 이틀에 한 번만 갖고 나오라 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미세먼지 증가를 원자력발전소와 연결지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탈원전 정책 반대 정치 공세에 활용하려는 거다. 정말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노후 석탄 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든지, 이미 있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활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천연가스 발전소는 가동 비용이 비싸, 전기료 상승 요인이 될 수 있으니 국민을 설득하자고 해야 한다. 보수 쪽에서 석탄 발전소 줄이지 말고,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는 반대하면서 원전을 이야기하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183개국 중 미세먼지(PM2.5) 때문에 조기 사망하는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핀란드가 가장 낮고 한국은 27번째로 낮다.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했는데 진짜 안 써도 되나.

세계적으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라고 권하는 나라는 아직 찾지 못했다. 어느 정도 미세먼지 농도부터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과학적 데이터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다만 미세먼지가 많아서 몸이 불편하고 호흡기 증상이 있다거나 실제로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에 한해서 쓰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나 언론이 쓰라고 해서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스크를 썼는데 숨쉬기가 불편하면 벗어야 한다. 어린이들은 마스크를 쓰면 숨을 쉬기 어렵고,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더욱 주의해야 한다.

<누가 공포를 부추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미세먼지와 관련해선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막연하고 과도한 대중의 공포를 가라앉혔으면 하는데, 정부가 되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언론이 정부 대책에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향을 잡아줬으면 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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