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도 포기…어려워진 기업 승계, 전문경영체제 확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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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자녀 승계 포기"…다른 대기업들도 편법 없인 승계 어려워
'소유-경영 분리' 경영방식 변화 전망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장기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총수 일가 중심의 세습 경영이 상속·증여 과정에서의 편법 난무 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재계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준법 의무 위반 행위와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했다. / 연합뉴스

제조업 중심의 주요 그룹 가운데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한 그룹은 삼성이 처음이다. 그동안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기업들은 주로 2000년대 들어 몸집을 키운 정보기술(IT) 기업이었다.

국내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NXC 대표는 지난 2018년 ‘넥슨 공짜 주식’ 관련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경영권을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명의 자녀를 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자녀 승계 의지가 없다는 점을 사석에서 꾸준히 드러냈다. 이해진 GIO는 네이버가 2017년 준(準)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총수로 지정된 이후에도 "순환출자 및 친족의 지분 참여가 없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며 자녀 승계 가능성을 일축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IT 업계 특성상 10~20년 뒤에도 살아남으려면 경영 전문성이 필수인 데다, 경영인의 길을 걷지 않고 음악 등의 진로를 택한 자녀들의 선택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들도 이 같은 이유로 자녀 승계가 아닌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제조 중심의 국내 대기업들은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탈세나 편법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증여세가 50%를 넘기 때문에 자녀 명의 회사 설립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나 순환출자방식을 주로 사용해왔는데, 사회 안팎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감시를 강화하면서 더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대기업 총수도 대부분 개인 지배력이 10~20%에 불과해 더는 증여를 할 수 없는 기업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부회장도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 업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하고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을 시작으로 전문경영인 중심의 체제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총수는 이사회 체제를 구축한 뒤 우수 인재 영입, 투자 등에 집중하는 식이다.

실제 유럽, 미국 등에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경영체제를 구축한 기업이 다수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이런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회사 운영 방식을 바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의 롤모델로 알려진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의 경우 160여년간 5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 등을 운영하는 발렌베리그룹은 전문경영인들에게 자회사의 경영을 맡기고 지주회사 인베스터를 통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후계자도 경쟁을 붙여 능력 순으로 선정한다.

이 부회장이 4세 경영 포기 선언을 하면서 삼성그룹을 둘러싼 지배구조 관련 불확실성도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등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 관련 불확실성이 상당히 감소하면서 온전히 실제 기업가치에 근거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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