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보복 파장…美애플·퀄컴까지 사정권

입력
수정2019.07.04. 오후 10:10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日, 4일 수출규제 시작

韓 반도체·OLED 생산 차질땐
얽히고설킨 글로벌 공급망 붕괴
美 IT제품 개발·출시까지 타격

상황 악화땐 트럼프 나설수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해외고객에 긴급 메시지


◆ 日 경제보복 단행 ◆

4일 서울 광화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 통제 관련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 셋째)이 일본에 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유 본부장은 일본 조치가 국제 전략물자 관리제도의 근간인 바세나르체제와 수출 제한을 금지하는 관세 및 무역 일반협정(GATT)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한주형 기자]
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등의 생산에 활용되는 3개 소재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사전허가제)'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한국 기업뿐 아니라 애플·엔비디아·퀄컴·인텔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글로벌 공급망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 미국 업체가 메모리(D램·낸드플래시)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OLED 패널 등에서 한국 업체로부터 많은 수량을 공급받고 있는 데다 시스템반도체의 설계·생산 과정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과 밀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에서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 미국 ICT업체의 완제품 개발·출시 등도 헝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발 '규제 여파'가 미국 ICT 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직접 나설 가능성도 업계에서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4일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와 '불화수소(에칭가스)', OLED 패널 등에 쓰이는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에 대해 한국에 적용했던 수출 우대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이들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려는 업체들은 일본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 과정에 90일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정상적으로 수출허가를 진행한다면 한국 업체가 보유한 재고량 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상당 양에 대해 수출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국내 반도체업체와 디스플레이업체는 생산에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기준으로 PR와 에칭가스의 전체 수입 중 일본 비중(대일 수입 의존도)은 각각 91.9%, 43.9%였다. 플루오린폴리이미드의 대일 의존도도 93.7%에 달한다. 일본 제품의 기술력이 뛰어난 데다 수입 비중도 높아 단기간에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윤준식 포스텍 박사는 "일본 정부가 이들 소재에 대해 수출허가 물량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면 한국 업체들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설계·생산·소재업체와 대형 고객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게 이 분야 공급체인의 특징이기 때문에 생산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설계·수요를 담당하는 글로벌 대형 ICT업체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 차질이 빚어지면 미국의 대표적 시스템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나 퀄컴 등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들 업체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로 생산은 삼성전자의 파운드 등에 맡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히 극자외선(EUV)을 활용하는 첨단 공정에서 경쟁사들을 앞서가고 있는데 EUV에는 사실상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고품질의 PR가 활용된다.

팹리스가 칩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파운드리 업체와 소통을 계속하며 설계·생산에서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따라서 팹리스가 효과적으로 제품을 개발·출시하기 위해서는 파운드리업체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파운드리업체의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비즈니스 전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메모리는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생산에 문제가 발생하면 글로벌 시장이 출렁이고 주요 수요처인 글로벌 ICT기업의 조달계획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 1분기 D램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70.4%(삼성전자 40.6%, SK하이닉스 29.8%)에 달했다. D램·낸드플래시의 주요 고객은 데이터센터 투자를 많이 하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과 스마트폰을 만드는 애플 등 미국 기업이 많다. 이 밖에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중국 화웨이 등도 대형 고객이다.

또 애플은 아이폰에 쓰이는 올레드 패널의 대부분을 삼성디스플레이에 의존하고 있다.

오는 9월께 신제품을 선보이고 글로벌 시장에 순차적으로 출시·공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삼성디스플레이의 패널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아이폰 신제품의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스마트폰용 올레드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 점유율은 86.5%였다.

한편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고객사에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한 입장문을 내고 "현재 수준의 생산량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추후 변동 사항이 발생하면 추가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 상황과 관련해 물량 공급 등에 대한 고객사들의 우려와 문의가 빗발치자 회사 차원에서 고객사를 안심시키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부와 분야별로 긴밀하게 공유하고 있다"면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일부 고객사 문의가 이어지자 이번주 초 비슷한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식 기자 / 황순민 기자]

▶네이버 메인에서 '매일경제'를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매콤달콤' 구독 ▶무궁무진한 프리미엄 읽을거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