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 막고 좌석 늘린 광역버스… “사고나면 탈출 어떻게”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경기∼서울 광역버스 타보니
 
17일 경기지역에서 서울을 오가는 한 광역버스의 뒷문이 폐쇄돼 있다. 2014년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버스의 입석이 금지된 뒤 좌석을 늘리기 위해 뒷문을 없앤 것이다. 비상시 탈출구로 이용할 수 있지만 방법이 복잡한 데다 안내조차 없어 대부분의 승객이 이를 모르고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7일 오전 경기 성남시에서 서울역을 오가는 한 광역버스. 과거 뒷문이 열리고 닫히던 자리에 좌석 4개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다른 좌석들에 비해 좁고 불편해 보였다. 앞뒤 좌석 등받이의 간격은 약 67cm. 다른 좌석의 간격(약 75cm)보다 10cm 가까이 좁았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경우 허리를 세우고 앉아도 무릎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뒷문의 절반가량은 두꺼운 철판으로 덮여 있었다. 2년여 전까지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이용하던 문이다. 뒷문 유리에는 비상시 탈출 요령이 적혀 있었다. 좌석 밑의 손잡이를 잡아당겨 의자를 뒤로 밀치면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림과 설명만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났을 때 탈출을 안내해야 할 버스 운전사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뒷문 개방법을 묻는 질문에 “교육 때 듣기는 했는데 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라는 버스 운전사의 답변이 돌아왔다.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참사는 비상구 없는 버스와 운전사의 안내 소홀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수도권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도 마찬가지다. 이 사고 후 매일 출퇴근할 때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 생활 10년째인 몽골 출신 유학생 앨백바야르 씨(38)는 매일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과 성남을 오간다. 앨백바야르 씨는 “꽉 막힌 뒷문을 보면 위험 상황이 상상이 돼 아찔하다”며 “혹시나 탈출하기 힘들 것 같아 버스 탈 때 가급적 맨 앞에 앉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고양 성남 용인시 등 경기지역에서 오가는 상당수 광역버스가 똑같다.

 광역버스에서 뒷문이 사라진 건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정부가 고속도로 경유 광역·직행버스의 입석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당장 버스를 늘릴 수 없자 대신 기존 뒷문을 없애고 좌석을 추가한 것이다. 경기지역 노선버스 645대가 뒷문을 없애고 좌석 4개를 늘렸다.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버스 1690대 중 38%에 달한다. 그 대신 비상시 뒷문을 열 수 있도록 했지만 긴급 상황에서 단단히 고정된 좌석을 제거하고 철문을 여는 건 쉽지 않다. 뒷문 개방이 어렵다면 비상용 망치로 유리창을 깨면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비치하지 않은 버스가 있었다. 이날 오전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서울역을 오가는 한 광역버스에는 비상용 망치 4개 중 1개가 사라져 있었다.

 안전 조치를 다 갖춰도 적극적인 안내가 없으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버스에서 스티커 1, 2개를 붙여 놓거나 자동 방송으로 안내하는 게 고작이다. 운전사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비상용 망치와 뒷문 탈출 방식, 안전띠 착용을 설명하는 버스는 거의 없었다.

 경기 지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약 54만 명.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울산 관광버스 참사가 수도권 고속도로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뒷문을 막아 놓은 건 비상문을 걸어 잠근 것과 마찬가지”라며 “광역버스 안전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강승현 기자

▶ 동아일보 단독 / 동아일보 공식 페이스북
▶ 어제 못본 TV 명장면이 궁금하다면 'VODA'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