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답답한 행정에…서울대, 구글 AI 핵심인재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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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8.31. 오후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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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알고리즘 개발 참여한
구글 李모박사 영입 시도했지만
"겸직 허용 규정 없다"며 철회

작년말 정부 "AI는 겸직 허용"
국회도 관련 법안 5월 통과

서울대는 "법 시행 전까진
교수 겸직 규정 못바꾼다"


미국 구글 본사에서 일하는 인공지능(AI) 최고급 인재를 영입하려던 서울대 계획이 결국 무산됐다. 대학들의 AI 인재 영입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정부가 '교수·기업 겸직 허용' 방침을 발표했지만 서울대 인사규정 개정이 지연되면서 글로벌 인재를 놓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학계 관계자는 "글로벌 AI 전쟁에서 우수 인재를 누가 얼마나 빨리 붙잡느냐가 경쟁력을 가를 관건인데 안타까운 사례"라고 지적했다.

31일 서울대와 업계에 따르면 구글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이 모 박사는 올해 2학기부터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었지만, 서울대 인사규정에 교수·기업 겸직 근거가 없어 임용이 철회됐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 박사는 조지아텍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등 업계 경험을 갖춘 AI 데이터 분석 전문가다. 유튜브의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측은 '글로벌 AI 인재 영입 1호' 프로젝트로 이 박사 영입에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고위 관계자는 "학내 규정상 임용을 보류할 수 있는 건 최대 2학기 동안 가능한데, 이 박사의 경우 작년 2학기와 올해 1학기에 임용이 연기됐기 때문에 9월 1일이 정식 임용 마감 시한이었다"며 "겸직을 허용한다는 예외규정이 없어 이 박사의 이번 교수 임용은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면서 AI 학과에 한해 교수 겸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서울대는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겸직을 허용하는 인사 예외규정을 만들지 않고 있다가 어렵게 모신 글로벌 인재를 놓친 것이다.

이 박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간 최대 6억원을 지원하는 '해외 고급 과학자 초빙사업(브레인풀 플러스)'에도 선정된 우수 과학인재여서 아쉬움이 크다.

이에 대해 서울대는 "상위 법인 지능정보화 기본법 시행일이 12월 10일이고, 이에 맞춰 교원 겸직 예외규정을 연말까지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원 겸직 예외규정 마련에 대한 필요성은 지난해부터 논의됐는데 상위 법령 등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 속도를 맞추려는 차원"이라며 "대학의 늑장 행정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서울대 관계자는 "재임용을 타진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면서 임용의 불씨가 살아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AI 대학원을 운영 중인 카이스트는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지난 6월 과기정통부에서 교원 겸직이나 휴직이 가능한 지능정보화 기본법 개정안을 접수했다"며 "카이스트는 이미 원규에 교원 겸직 규정이 마련돼 있어 새로운 제도를 추가 반영하지 않고도 외부인의 교원 겸직이 가능하도록 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능정보화 기본법은 5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2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AI 기술 분야 민간 전문가를 교수 요원으로 유치할 수 있도록 대학교원·연구원 등의 휴직이나 겸임·겸직을 허용하는 특례를 담고 있다. 그간 학계와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AI 전문 인력 부족 현상을 해소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서울대처럼 관련 법 시행 전이라며 여전히 겸직을 불허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딘 대학 행정이 인재 유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AI 대학원 관계자는 "이 분야 인재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지난해 출범한 AI 대학원들이 좋은 교수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면서 "겸직 허용 예외규정이 없다는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교수로 오라는 소리인데, 누가 10분의 1 수준 연봉을 받으면서 대학교수로 오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국내 유수의 반도체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미국 대학교수 출신 한 임원도 겸직 허용이 안 돼 서울대행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는 올 상반기 브레인풀 플러스 사업 지원 대상으로 글로벌 인재 5명을 선정했다. 이 박사를 뺀 다른 교수 4명(서울대 1명, 카이스트 3명)은 7월 1일부터 정식교원이 돼 정부 지원(연간 최대 6억원, 최장 10년)을 받게 됐다.

[신찬옥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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