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대구 공연 막힌 뮤지컬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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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1.22. 오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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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블랙리스트 파동이 공연계를 강타한 상처가 아직도 깊이 남아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검증된 상업 뮤지컬마저 정치적 이유로 공연이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뮤지컬 ‘모래시계’의 제작사는 공식 SNS를 통해 대구공연이 무산된 이유를 소상히 밝혔다. 15일에 대구 공연이 어려울 것 같다는 보도자료를 돌리자 공연장으로 내정되어 있던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장 점검과 계약 지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란 엉뚱한 이유를 들어 본질을 가리려고 하자 이례적으로 공연 무산 과정을 밝힌 것이다.

이 글에 따르면 1월 9일 화요일, 제작사는 대구 공연 진행사로부터 대구 공연 티켓 오픈 동의를 요청하는 연락을 받고, 티켓 오픈에 동의했다. 그러나, 1월 10일 수요일 대구공연 진행사로부터 계명아트센터의 대관 계약이 지연되고 있으니 공연장 측과의 추가협의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음날인 11일 목요일, 대구공연 진행사는 뮤지컬 ‘모래시계’가 정치적 중립을 요하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공연장 측의 우려를 전달하며 대관승인을 재검토 통보를 받았다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작사는 대관불가 사유가 공연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한 것이니 공연장 측과 다시 협의해주기를 요청했고, 위와 같은 이유로 공연 진행이 안 될 시 발생 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입장도 함께 전달했다. 그런데도 12일 금요일에 계명아트센터는, 향후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감수하겠다며 대관이 어렵다는 유선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공연의 기획진행 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 내용을 보고 공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 투어 공연은 대개는 지방 흥행권을 따낸 기획사가 책임지고 일을 진행하는데, 모래시계와 같은 대형 뮤지컬은 서울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지방 공연에 대한 흥행권 계약이나 대관신청, 주관사 선정 등이 다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대구라면 뮤지컬에 있어서는 제2의 도시니 만큼 가장 먼저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고, 3월 5일에 막을 올리는 일정이었다고 하면 티켓 오픈과 진행을 제외한 모든 작업이 막바지에 달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장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며 공연을 가로막은 것이다.

공연장 점검이나 계약금 미불 등의 사유가 있어 대관 불승인을 했다는 공연장의 주장은 대관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계명아트센터 정도의 극장이라면 최소 6개월 전에는 공연장 점검 일정이 정해져 있어야만 하고 대관 신청을 받을 때 이를 공지해야만 한다. 또 대관 승인이 나면 일종의 가계약이 이뤄진 상태가 되기에 대략 3개월 전 쯤에 계약금을 내고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면 된다. 계약금 지불이 늦어질 경우 상황을 통보하고 지불의사를 물을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에 1월 9일까지는 아무 말 없다가(티켓 오픈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2일에 불승인 통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대형 뮤지컬의 경우 티켓 판매금액의 분배금을 대관료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 상황에선 계약금을 받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더구나 대구 공연의 기획사는 이미 ‘레베카’ 등의 굵직한 작품들을 대구에서 흥행시킨 회사로 기획력과 재력이 있는 곳이다. 계약금 몇 푼으로 이런 물의를 일으킬 곳이 아닌 것이다. 하물며 TBC가 공동기획을 하는 회사다. 공연장 점검이나 계약금 미불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진짜 공연 취소 사유가 15일에 알려지자 공연장은 슬그머니 원만한 해결을 타진해 왔다. 다른 사유로 무마해 주면 공연장을 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꼴인가?

제작사는 금전적인 손해가 나더라도 꼼수와 블랙리스트에 놀아날 수 없다는 사명감에 배우, 스태프 및 공동 제작사와 협의를 하고 공연 취소를 결정하면서 입장문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공연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특정인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이 되어버린 공연장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죄송스런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사실 그동안 계명아트센터는 대구를 뮤지컬의 도시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전문인력들이 소신 있게 라인업을 짜면서 내실 있는 공연장으로 만들어 왔기에 총장 사유화 논란으로 얼룩진 계명대학교의 이미지까지 쇄신해 내던 곳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잘 알지도 못하는 특정 인사의 판단이 극장이 쌓아올린 신뢰도를 일시에 무너뜨렸다. 외부의 압력으로 공연장이 사실상 검열을 한 것이기에 블랙리스트 사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공연이나 영화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화 한 편, 공연 한 편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민주화 운동을 다룬 상업 공연 하나가 지방 선거에 영향을 끼칠 정도라면, 그 지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엉망이 되어 있다는 것인가? 그 두려움이 현실이라면 지역을 그렇게 만든 정치인들이 마땅히 퇴출되어야만 한다. 공연이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선상원 (won61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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