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예스24까지 합쳐서 평균 냈을까?" 중기부의 어이없는 탁상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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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19. 오후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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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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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받을 줄 알고, 그걸로 이번 달 월세 내려고 했는데…"

5차 재난지원금인 '희망회복자금' 지급 첫날.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작은 서점 사장님이 전한 말입니다. 저도 당연히 받았을 거로 생각하고 지원금은 얼마나 받으신 건지, 어디다 쓰실 건지….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려고 불쑥 들어간 건데 못 받았다는 사장님 말씀에 모두가 실망했습니다. 못 받은 사장님도 허탕친 저도…

그런데 왜 못 받을까.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서점 사장님도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학생들의 등교 중단은 반복됐습니다. 당연히 학교 앞에 있는 이 서점은 코로나로 매출이 30% 넘게 감소했습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게 분명한데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 곳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장님은 주변 서점에 다 연락을 돌려봤는데 아무도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책 한 권 못 판 건너편 서점도, 옆집 꽃가게도, 문구점도 모두 지원금을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경영위기 업종만 지원…서점은 빠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집합금지, 영업제한, 경영위기업종이 이번 지원금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영위기업종은 지난해 매출이 10% 이상 감소한 업종입니다. 서점은 집합금지나 영업제한 조치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매출이 줄었으니 경영위기업종에 해당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경영위기 업종은 277개나 됩니다. 세탁소, 사진관, 미용실, 영화관, 면세점, 독서실, 마사지, 호텔, 안경원, 옷가게. 여기에 소상공인인지, 정말 코로나로 피해를 봤을지 의문이 드는 태양력 발전업, 화력 발전업, 전기 판매업, 수력 발전업까지도 포함됐습니다. 백화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서점이 없습니다.


설마 대형 온라인 서점까지 함께 평균 냈을까?

정부 분류대로면 지난해 서점 장사가 나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전체 서점 업종의 평균 매출이 10% 이상 감소하지 않았다는 건데, 제가 만나 본 서점 사장님들은 다 죽겠다고 합니다. 그럼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서점 사장님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보문고나 예스24, 알라딘처럼 온라인에서 장사가 잘된 이런 대기업들까지 포함돼서 그런 건 아닐까?

중기부에 확인을 했습니다. 서점이 속한 업종에 실제 교보문고나 예스24가 속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업종 안에서 대기업이나 소기업을 따로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국세청에도 확인했습니다. 부가가치세를 신고할 때 적는 분류코드(1,500여개)를 기준으로 매출 등락을 계산해 중기부에 넘겼을 뿐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을 골라낼 수도 없고, 중기부도 따로 요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서점이 왜 빠졌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소상공인 지원하겠다고 해 놓고는 대기업 매출까지 통째로 넣어서 평균을 낸 뒤, 그걸 기준으로 삼은 겁니다.


설마가 사람잡았다. 예스24까지 합쳐서 평균 냈을 줄이야.

서점은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 업종으로 분류됩니다. 취재 결과 설마설마했던 게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예스24가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이었습니다.

예스24 지난해 매출은 6,130억 원. 1년 전보다 1천억 원 넘게 성장했습니다. 코로나 특수를 제대로 누린 셈입니다.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의 2019년 전체 매출은 2조4천억 원 규모. 그럼 예스24 혼자서 업종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겁니다.
수많은 동네 서점들의 매출이 줄어들어도, 예스24 혼자서 매출을 1천억 원 넘게 끌어올리면, 업종 전체 매출은 줄지 않게 됩니다. 평균값의 함정입니다. 정부가 이런 함정에 빠질 위험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겁니다.

업종 평균 매출로 지원 대상을 정해도 될까?

업종 분류 기준도 자의적입니다. 매출 대부분이 소매에 발생하는 교보문고는 국세청에 주 업종을 '서적, 잡지 및 기타 인쇄물 도매업'으로 신고했습니다. 매출 4천억 원이 넘는 알라딘은 '기타 통신 판매업'입니다. 결국 국세청에서 분류한 업종 기준만으로는 그 업종의 실태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꽃집도, 문구점도 지원금을 못 받았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업은 받지만, 일반영화제작업은 못 받았습니다.


책임 회피만 하는 중기부의 해명

기사가 나간 뒤 중소벤처기업부가 해명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해명이 더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업종 매출을 계산할 때 기업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코로나로 인한 영향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대기업이 더 피해를 본 업종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적 소매업 업종 안에 어떤 업체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평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검토조차 안 했다는 뜻입니다.


두텁고 폭 넓게 주겠다더니…

정부는 "이번 지원금이 폭넓고, 두텁게, 그리고 신속 간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영위기업종이 4차 때 112곳에서 5차 때는 277곳으로 늘었다고 홍보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원금을 받는 사람은 4차 때보다 100만 명이나 줄어들었습니다. 4차 때는 지원 대상 업종이 아니더라도 매출 감소만 확인되면 100만 원의 지원금을 줬는데, 이번에는 그걸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업종 매출 감소가 정말 코로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사양 산업이라서 그런 건지 정확히 답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그걸 정확히 걸러내기 위해 업종 평균 매출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지만, 여기에 대기업은 물론 온라인으로 코로나 특수를 누린 기업들까지 다 포함시키는 바람에, 곳곳에 사각지대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매출이 감소한 사업체에는 모두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 훨씬 단순하고 사각지대도 줄이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기준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게 근근이 버티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허탈감과 실망감까지 안겨주지는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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