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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제의 정체는 '계면활성제'이다. 간단히 말하면 물과 기름을 서로 붙이는 역할을 하는 물질로 마가린과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도 사용된다. 유화제는 빵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세탁비누나 샴푸, 화장품을 만들 때도 들어가는 계면활성제. 물론 종류는 다르지만 계면활성제가 식품이 아닌 다른 종류의 공산품에도 들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씁쓸하다.

제빵개량제와 유화제를 사용하면 언제나 부드럽고 신선한 빵을 맛볼 수 있다. 1주일 이상 내버려두어도 부드러움이 그대로 유지된다. 옛날 빵은 단단해지거나 곰팡이가 생기는 게 보통이었다. 기적의 빵(주: 날짜가 좀 지나도 썩지 않는)은 이런 식품첨가물 덕분에 탄생한다. 식빵만 해도 무려 8~13가지의 첨가물이 들어간다."(<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중)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거름 출판사 펴냄)에서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식빵을 만드는데 대략 열 가지나 되는 식품첨가물이, 그것도 화장품이나 샴푸, 주방세제 등에 쓰이는 계면활성제가 들어간다는 걸 몰랐다.

첨가물과 함께 강제로 만들어지는 빵들

<대한민국 동네빵집의 비밀>
 <대한민국 동네빵집의 비밀>
ⓒ 거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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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식빵은 밀가루와 탈지분유, 이스트 등과 같은 발효제, 버터, 설탕과 소금, 어떤 식빵인가에 따라 다르게 들어가는 옥수수나 우유 등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사실 앞에 속이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유화제와 함께 쓰인다는 제빵개량제는 합성첨가물 중 3~4개의 품목을 혼합해 만든 화학물질이다. 제빵개량제를 쓰는 이유는 '단시간에  대량의 빵을 발효시키는 것으로 적은 원료로 부드러운 빵을 한 번에 많이 만들기 위해 사용한다. 제빵개량제를 사용하면 빵의 틈속에 공기가 들어가 빵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식빵이 이처럼 유화제와 제빵개량제를 비롯한 8~13가지의 식품첨가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이렇게 만들어 진다고 지목되는 것은 요즘 어느 거리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의 빵집에서 팔리고 있는 식빵들이다.

1~3차 발효를 거쳐 소규모로 만들어지는 동네 빵집의 식빵들과 달리,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 각 프랜차이즈 점포에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식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발효를 어느 정도 생략해 식품첨가물로 강제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다.

책에 의하면 이런 빵들은 '빵만 먹으면 더부룩'해지거나 트림을 할 때 역하거나 신 냄새가 나는 '빵트림'이라는 것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어떤 밀가루를 썼느냐에 따라 빵트림이 나기도 하지만, 이처럼 어떻게 만들었지에 따라서 빵트림이 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8~13가지나 되는 식품첨가물로 강제 발효시켜 만든 빵들의 이런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밀가루와 맞지 않아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빵이 식품첨가물 범벅이라거나 강제 발효시켜 비정상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한 여름에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부분 프랜차이즈 제과업체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작업 시작 시기는 여름부터 가을이다. 준비 수량 때문에 적어도 1~2개월 전에는 제작에 들어간다. 생크림 케이크는 시트 사이에 생크림을 얹고 시트를 포갠 다음, 매장에 나가기 직전에 겉에 생크림을 씌우고 냉장 보관했다가 유통한다. 무수 케이크나 고구마 케이크와 같은 경우 거의 완제품으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때가 되면 유통시킨다. 매장으로 옮긴 뒤에는 장식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기 많기로 소문난 고구마 케이크는 진짜 고구마에서는 전혀 나지 않는 '고구마향 식품첨가제'가 다량 들어 있고, 딸기 무스 케이크에는 '딸기향 식품첨가제', 초코 케이크에는 '초콜릿향 식품첨가제'가 잔뜩 들어 있다. 몸속에 다량의 식품첨가제를 품고 여름부터 냉동된 채로 수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 매장 진열대에서 얼었던 몸을 천천히 녹이며,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중

책 속 '한여름에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한 부분이다. 놀랍게도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크리스마스에 팔리는 케이크들은 한여름부터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케이크가 가장 많이 팔리는 때는 크리스마스 전후 3일 동안이다. 이 기간에 1년 동안 팔리는 케이크 양의 70%가 팔린단다. 책에 의하면 점포마다 평균 500개 정도가 팔리는데 번화가에 위치한 대규모 빵집의 경우 2000개까지 팔린다. 물론 이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이야기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케이크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맛이 같은 그런 케이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한 프랜차이즈 빵집은 전국에 약 3000개나 된단다. 프랜차이즈 빵집 한 군데서 대략 500개 정도가 팔린다고 계산하면 150만 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대규모 사설을 갖춘 점포에서 이삼일 사이에 500개를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분업화된 프랜차이즈 빵공장에서도 일주일 내내 기계를 돌려도 절대 만들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대형 프랜차이즈 빵공장에서는 한여름부터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반제품 형태로 만들어 냉동 보관했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각 점포로 유통한다. 책에 의하면 "12월이 되면 유통차를 통해 전날 만든 시트인 것처럼 옮겨지고, 매장의 제빵실에서 생크림 장식을 하거나 과일을 얹거나 초콜릿 장식 몇 개를 얹는 것으로 완제품이 된다"고 한다.

동네 빵집의 부활을 위한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은 소비자들은 절대 알기 힘든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빵의 진실들을 알려 준다. 취지는 프랜차이즈 빵집 때문에 점점 더 설 곳을 잃고 있는, 최근 몇 년간 사라져 버린 동네 빵집들의 부활을 위해서다. 

1990년대, 빵집 혹은 제과점은 서민들이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인기 아이템 중 하나로 이렇다 할 거리나 골목에는 어김없이 빵집이 들어서곤 했다. 이때만 해도 프랜차이즈 빵집은 불과 10% 정도. 그러나 2012년 현재 프랜차이즈 빵집은 동네 빵집보다 많다.

대한제과협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7년 3489개였던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빵집은 매년 늘어나 2011년 현재 5290개에 이른다. 4년 동안 52% 늘어난 셈이다. 반면,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빵집은 2007년 8034개에서 2011년 5184개로 4년 동안 34%나 줄어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니 최근 얼마 전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빵집들에 의해 동네빵집들이 설 곳을 잃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 난 프랜차이즈 빵집의 빵들을 선호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담백한 빵을 선호한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식빵은 굽지 않고 그냥 먹어도 말랑말랑 부드러워 좋아했다.

이런지라 프랜차이즈 빵집들 때문에 동네 빵집들이 설 곳을 잃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를 경제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 역시 영세상인이고, 우리의 업종(자동차부품 및 용품) 역시 이미 진즉에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식의 대기업의 체인점화' 때문에 거덜 난 사람들이 많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빵들의 진실을 알게 됐다. 진실을 알아가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프랜차이즈 빵집과 동네 빵집의 문제는 여기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먹을거리 문제'라는 것이다.

빵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득

아울러 드는 생각 혹은 불만,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빵에 이처럼 문제가 많다면 빵쟁이들은 왜 진즉에 이런 진실을 말하지 않았나'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을 독자 중 나처럼 '빵보 아들'을 뒀고, 때문에 나처럼 지난날 참 어지간히도 빵을 사다 나른 사람들은 쓰린 마음으로 질책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170여 년이나 숙성된 희망의 이야기가 있다. 1834년 무렵 일본이 아직 빵 금지령 속에 있을 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들어 온 프랑스인 '모방 신부'와 '사스땅'이 최초로 빵을 전했다. 명확하게 최초의 빵으로 가록된 것은 1856년 입국한 프랑스 신부 베르뇌 등 선교사들이 숯불을 피운 후 떡시루를 엎고 그 위에 빵 반죽을 올린 다음, 오이 자배기(둥글납작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진 질그릇)을 덮어 화로를 만들고 구워 먹은 빵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양이 마치 우랑(쇠불알)과 같다고 하여 '우랑떡'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우랑떡, 이 재미있는 이름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알려진 빵 이름이다."(<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중)

식품첨가물을 8~13가지나 넣어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파는 공장빵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식빵,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몇 달 전부터 제조하기 시작하는 프랜차이즈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야기로 서평을 써내려가 이 책이 다소 민감한 문제들로만 이뤄졌다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을까.

책의 저자 중 한사람은 동네 빵집 제빵사로 출발해 현재 동네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빵쟁이이다. 성공한 동네 빵집 운영자인 그는 동네 빵집의 부활을 위한 이야기와 우리가 알아야 할 빵의 진실을 설명한다. 중간중간에 '우랑떡'이야기처럼 빵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루두루 얻을 것이 많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최세호·정진희 씀 | 거름 | 2012.04. | 1만2800원)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 - 살아 숨 쉬는, 진짜 빵이 있는 집

최세호.정진희 지음, 거름(2012)


태그:#동네빵집, #프랜차이즈 빵집, #식빵, #크리스마스 케이크, #우랑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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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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