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극장가, 방문 비중 높아져 ‘반색’
ㆍ그동안 큰 영화 밀려 상영 못했던
ㆍ‘용길이네 곱창집’ 등이 자리 꿰차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계의 시계가 멈췄다. 관객은 사상 최저이고, 영화 대다수는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다. 일부 영화는 해외 촬영뿐 아니라 국내 촬영도 중단했다. 영화관들도 개봉작이 없어 기획전 명목으로 과거 개봉작을 모아 상영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매일 3만명가량이 꾸준히 영화관을 찾는다. 어떤 이들일까.
지난 19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만난 정모씨(27)는 한 달에 적게는 2~3편, 많게는 4~5편 본다고 했다. 이날 <스킨>을 혼자 보러 왔다는 정씨는 “극장이 밀폐돼 있어 감염 우려가 크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떨어져 앉는다”며 “마스크도 다 쓰고 조용히 본다. 솔직히 그런 면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하는 카페나 식당이 영화관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관객 절반 20대…3명 중 1명 혼영족
이달 영화관을 방문한 관객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관객 3명 중 1명은 정씨처럼 혼자 영화관을 찾는 ‘혼영족’이었다. 연령대는 20대가 절반에 가까웠다.
26일 CGV 관객 분석 자료를 보면, 이달 1~19일 관객 중 혼자 영화를 본 관객은 전체의 33.45%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7.61%)보다 15.84%포인트 늘었다. 반면 가족 단위로 추정되는 동반 관객 2인 이상 비중은 8.09%로, 지난해 같은 기간(23.63%)보다 15.54%포인트 급락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관객중 20대는 전체의 46.78%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4.93%)보다 11.85%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40대 관객 비중은 12.83%로, 지난해 같은 기간(24.02%)보다 11.19%포인트 줄었다.
40대 관객은 크게 감소한 데 비해 10대 이하 관객 비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코로나19 전에는 자녀 동반이 아니라도 혼자나 부부끼리 영화관을 찾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감염 우려로 아예 영화관을 가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별로는 여성 관객이 57.53%, 남성 관객이 42.47%로 지난해 같은 기간(여 57.74%, 남 42.26%)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CGV 관계자는 “코로나19에도 극장을 꾸준히 찾는 관객들이 영화 마니아일 것으로 추정은 했지만 혼영족과 20대 비중이 이렇게 클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전체적으로 관객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이들이 선호할 만한 콘텐츠와 마케팅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작은 영화엔 오히려 기회 될까
통상 한 해 영화 개봉 일정은 ‘텐트폴 영화’로 불리는 할리우드 대작들이 개봉일을 선점하고, 한국 대작들은 이를 감안해 시기를 잡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할리우드 대작들이 개봉 시기를 늦추면서 전체 일정이 틀어졌다. 한 대형 배급사 관계자는 “큰 영화의 경우 하루 관객이 3만명이면 사실상 망한 것”이라며 “국내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바로 영화관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추이를 보고 개봉 시기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봉 신작이 없는 가운데 그동안 큰 영화들에 밀려 상영관을 잡지 못하던 국내외 독립·예술영화에는 오히려 이번 상황이 ‘위기 속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지난 5일 240개관에서 개봉했다. 비록 관객 수는 적지만 입소문을 통해 지난 18일에는 박스오피스 9위까지 올라서는 등 상업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누적 관객 수는 지난 25일 기준 2만236명이다. 누적 관객 1만명을 상업영화 100만명과 같다고 보는 독립·예술영화로서는 적지 않은 관객 수다.
이 같은 추세와 기대를 반영해 상대적으로 제작 규모가 작은 독립·예술영화들은 꾸준히 개봉하고 있다.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용길이네 곱창집>은 지난 12일 90개관에서 개봉했다. 지난 19일 개봉한 <비행>은 128개관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25일에는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신인감독 대상 등 여러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이장>이 개봉했다. 중소 배급사 관계자는 “다들 눈치작전을 하고 있다. 상황이 호전된다 전제하더라도 예산이 큰 영화들은 4월 개봉이 부담스럽다”며 “하반기 개봉을 준비 중이던 저예산 영화를 후반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앞당겨 개봉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독립·예술영화를 수입·배급하는 측은 이달 말이 반등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 관계자는 “보통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만 상영되는데 극장 측에서도 신작에 대한 수요가 있어 일반 상영관에서도 상영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그래도 계속 뭔가 하고 있다는 신호가 있어야 코로나19 사태가 호전된 이후에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것으로 본다. 반등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학·홍진수 기자 gomgom@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바로가기▶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