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점경쟁 내몰더니 ‘3040 청약 할당제?’···5060 ‘희생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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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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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 '청년 청약 할당제' 시동···세대갈등 키우나
가점제 부작용 경고에도 꿈쩍않다가
젊은층 지지율 떨어지자 다시 '땜질'
"공급 한정된 상황에선 제로섬 게임
정비사업 규제 풀어 물량 늘려야"
둔촌주공 아파트./서울경제DB

[서울경제]

# 일반분양 물량이 무려 4,700여 가구에 이르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예비 청약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아파트의 경우 가점이 낮은 3040세대 당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분양 전 가구가 전용 85㎡ 이하여서 모두 가점제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전용 85㎡ 이하의 물량을 100% 가점제로 공급하도록 했다.

청약가점이 낮은 3040세대를 중심으로 ‘패닉바잉(공황 구매)’이 이어지자 여당에서 제도 개편 논의가 솔솔 나오고 있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주거기본법 개정안’은 연령대별로 균등한 주거 기회를 부여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를 거처야 하나 일각에서는 ‘청년 청약할당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패닉바잉을 불러온 가점제 확대가 정부와 야당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 현 정부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혀준다며 가점제 공급을 ‘확’ 늘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제도가 문제가 많다며 3040세대들을 위한 방안을 또 마련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전 국토를 가점 경쟁으로 몰아넣은 정부 여당이 이번에는 정치적 접근으로 젊은 세대를 위한 방안 마련을 추진 중인 것 같다”며 “수십 년간 무주택 자격을 유지하며 청약 기회를 노려온 5060 장년층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전국 가점 경쟁 만들더니···또 ‘땜질 처방’=지난 2017년 8·2 대책 이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추첨제로 청약 당첨을 노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8·2 대책에서 전용 85㎡ 이하 주택에 대한 가점제 적용을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서울 전 지역이 포함된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100%,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이 포함된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75%를 가점제로만 공급하도록 했다. 비규제지역이라도 40%는 가점제를 적용하고 있다. 전용 85㎡ 초과도 투기과열지구에서는 50%, 조정대상지역에서는 30%를 가점제로 공급해야 한다.

현재 전국의 투기과열지구는 서울 전 지역을 포함해 49곳, 조정대상지역은 111곳에 달한다. 전 국민의 70%가 부동산 규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사실상 청약을 노리는 전 국민이 ‘가점 경쟁’에 내몰려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가점제 확대가 가져온 부작용에 대해 수차례 지적해왔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청약 당첨 기회를 우선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정책이었지만 실제로는 각종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여당은 꿈쩍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젊은 층의 ‘패닉바잉’ 분노가 지지율 등으로 연결되자 여당을 중심으로 가점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주거기본법 발의도 이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청년층을 달래기 위해 ‘2·4 공급 대책’으로 공급되는 아파트 가운데 전용 85㎡ 이하의 경우 30%는 추첨제로 공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근본 해결책 없이 문제만···“제도 폐지” 주장도=현재 세대 간 청약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다. 신혼희망타운 공급 물량을 늘리자 50대 이상 중장년층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젊은 층의 표를 얻기 위해 중장년층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내놓은 ‘연령별 할당’ 정책은 세대 간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이 발의한 주거기본법 개정안은 ‘연령대별로 주택 분양 과정에서 균등한 기회가 부여될 수 있도록 주택을 공급할 것’이라는 문구가 삽입될 뿐인데, ‘균등한 기회’가 어느 수준인지는 결국 정부가 결정하도록 하는 셈이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세대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 관계자는 “청약제도는 여러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매번 ‘땜질식 처방’에 집중하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이 같은 혼란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청년 표를 잡기 위해 정부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가점제를 대폭 확대해 혼란을 주더니 불만이 나오자 이를 달래기 위한 당근을 주는 식인데, 이런 게 계속 반복돼왔다”고 비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급량이 한정된 상태에서는 어떤 식으로 제도를 운용해도 ‘제로섬’ 게임이 될 뿐”이라며 “정비 사업 규제 완화 등 ‘주택 공급 안정화’를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작용만 양산하는 청약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심 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국민들을 줄 세워서 ‘당첨되면 5억 원’식으로 투기 판을 만드는 꼴”이라며 “지금처럼 왜곡된 청약제도 자체를 없애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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