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칼럼] 이대 사태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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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8.07. 오후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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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이화여대 사태로 교육계가 떠들썩했다. 교육부가 대학 내 평생교육단과대학(이하 평단)을 설립하여 고졸자와 직장인에게 학위를 주도록 하는 사업을 공모했고, 정원 및 전임교원 비율 조건이 완화되면서 이화여대가 참여를 추진했으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학생들의 저항에 끝내 총장은 백기를 들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학업기회의 평등 대 학벌순혈주의' '대학의 불통 의사결정' '교육보다 교육부의 돈줄에 휘둘리는 대학들' '교육부 비전문가들의 관료주의가 부른 졸속행정' 등이 언급되었다.

실력주의(메리토크라시·Meritocracy)가 학위주의(디그리오크라시·Degreeocracy)로 변질된 우리 사회의 민낯에 대해 모두 사회 집단의 역학을 말할 뿐 아무도 '교육'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무슨 능력을 기르는 교육인가? 타당성 검토 없이 급조한 단과대학에 충분한 교원과 제대로 된 커리큘럼도 없이 교육의 질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기존 대학 교원을 차출하여 겸임시킬 것이기에 기존 대학 교육의 질조차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렇게 대학 교육과 평생교육 모두 교육의 질 저하가 명백히 예상되는데도 교육부가 이것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겨 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기회의 평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평단사업은 '학위' 기회의 평등일지는 몰라도 질 높은 '학습' 기회의 평등은 아니다. 대통령도 선언한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사회를 진정 추구하려면, 교육부는 평단사업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필자는 십여 년 전 박사과정 시절에 필자의 전공 분야에서 세계적인 대가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캐나다의 명문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의 강좌였는데, 필자가 그 대학의 정규학생이 아니었음에도 수강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정규학생이 아닌 사람도 대학의 모든 강좌를 수강할 수 있는 비학위과정(Non-degree option) 제도 덕분이었다. UBC에서 제공하는 평생교육 서비스는 대학의 본교육과 담장을 쌓고 차별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모든 것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정규 입학생이 아니더라도 졸업생, 고등학생,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비정규학생들이 UBC의 대학 강좌를 그 해당 강좌 수강료만 내고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었다. 물론 강좌마다 선수 과목이나 최소한의 필수 자격 등을 요구한 경우는 있으나, 원칙적으로 정규학생들과 함께 수강하는 것을 원천 차단해왔던 국내의 평생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었다.

교육의 질을 어떻게 담보하느냐가 참 궁금했었다. UBC에서 정규과정으로 개설된 강좌들은 철저히 UBC의 질적 수준을 고수한다. 그러므로 비학위 과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가차 없이 수강 취소를 권한다. 그러나 비학위 과정의 학생이 정규학생 못지않게 잘할 경우 강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그 과목에 대한 성적표가 발급된다. 물론 학위를 수여하지는 않지만 과목별 성적표가 나오니 굳이 전 국민이 학위 취득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인 우리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회의 평등'과 '교육의 질적 수월성'은 대중교육과 엘리트교육의 양 극단에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교육의 질적 수월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회의 평등을 드라마틱하게 확대시키고 있다. 최근 하버드나 스탠퍼드 등 세계 명문대의 무료 온라인 강좌를 수강한 후 높은 질적 수준과 학습량, 공부 강도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미 세계적 추세가 학습 기회의 평등은 확대되고 학위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는 '학위'의 치맛자락만 부여잡고 있을 것인가? 대학의 권위는 '학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에서 나와야 한다. 나의 능력을 탁월하게 개발시키는 교육이라면 학위가 없어도 기꺼이 존중받을 것이다.

[이혜정 교육과혁신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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