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시대`의 연극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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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72]
직접 무대에 선 '상처꽃:울릉도 1974'
인권변호사 시절 다룬 '페스카마-고기잡이 배'
文 정부 문화정책의 지침 될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우리를 미워하는 정치세력을 이길 후보는 문재인 후보밖에 없기 때문."

대학로를 근거로 활동 중인 300여 명의 연극인들이 지난 5월 3일 문재인 후보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권병길, 김광림, 김태수, 기국서, 노경식, 박상현, 박장렬, 정상철, 이상우, 채승훈 등을 포함한 연극인들은 페이스북 등 온라인을 통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의사를 일제히 밝혔다.

이러한 연극계의 대규모 지지 선언은 매우 이례적이다.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 문건' 사건으로 인한 실망과 분노도 한몫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연극계와의 인연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돈독하다 할 만하다. 그는 공식적으로 무대를 경험해 본 첫 대통령이고 우연히도 그의 변호사 시절의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이 그의 취임 날 개막하기도 했다.

연극 까메오로 출연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문재인블로그
◆'상처꽃: 울릉도 1974'

문재인 대통령은 연극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다. 201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 '상처꽃: 울릉도 1974'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연극 '상처꽃: 울릉도 1974'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 규명과 재심 권고로 2014년 2월 재심 재판에서 간첩죄 관련 전원 무죄를 받은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유신 독재시대 국가 권력에 의한 조작 간첩 사건을 조명하고, 그로 인한 인권 침탈과 상처 후유증, 그리고 그 치유에 관한 작품이다.

국회의원 시절 그는 이 작품에서 대사가 한마디도 없는 재심 재판정 배석판사로 무대에 직접 섰다. 그럼에도 당시 그의 생애와 맞물려 화제가 됐다. 그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고도 학생운동 전력 탓에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32년 만에 연극무대에서나마 판사로 법복을 처음 입은 것이다.

◆'페스카마-고기잡이 배'

우연의 일치인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날에는 22년 전 그가 인권변호사 시절 수임했던 사건을 다룬 연극 '페스카마-고기잡이배'가 개막했다.

연극 '페스카마-고기잡이 배'는 1996년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온두라스 국적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최악의 선상 반란 사건을 다룬다. 조선족 선원이 한국인 선원을 포함한 11명의 선원을 살해한 죄목으로 법정에 올랐다. 인권변호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당시 문 대통령은 중국동포 선원 6명의 변론을 맡았다.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기도 했다. 법원은 1심에서 해상 강도살인 및 시체 유기 등 혐의로 전원 사형을 선고했다. 문 대통령은 2심부터 '페스카마호' 사건의 변론을 맡았는데 이듬해 4월 항소심에서 주범으로 지목된 전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아냈다. 이 중 전씨는 2007년 노무현정부 말기 특별사면 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2011년부터 최근까지도 일부 언론과 보수진영에서는 '페스카마호'와 관련해 문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했다. 노무현정부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던 문재인이 사면권을 남용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에도 언론 인터뷰 등에서 가해자들의 죄가 무겁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들 또한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동포로서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는 일관된 의견을 유지했다.

선상으로 꾸며진 소극장 무대 위에 17명의 배우들은 작은 무대에서 빠른 호흡으로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인간적인 우정을 나누다가도 금세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거센 분노를 서로에게 퍼붓는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임선빈 씨는 신문기사와 법정자료 등을 정리하고 문 대통령과 공동변론을 맡았던 조선족 변호사를 인터뷰하며 동분서주해 작품을 완성했다. 살기 위해 살인을 택한 조선족 선원들. 그들을 그 지경까지 몰아세운 건 한국인 선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을 죄는 아니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도 누군가를 편들기도 어려운 연극은 실화를 꼭 빼닮았다. 작품은 2017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21일까지 동양예술극장에서 무대에 오른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박근형 연출은 박근혜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시작이자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가 2013년 9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개구리'는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었다. 이 작품이 한 언론의 보도를 통해 청와대 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형 연출에게 지원이 중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차기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오를 무대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주로 올려 온 '남산예술센터'에 어렵사리 오르게 됐다.

지난 13일 재연 무대 개막 날, 도종환 국회의원이 극장을 찾았다. 도 의원은 현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함께 차기 문화체육부 장관 자리에 하마평이 오르는 인물이다. 당시 객석에서 연극을 감상하던 도 의원은 연극 종료 후 마련된 대담에 현장에서 즉석 초청돼 문재인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발언했다.

문재인정부의 문화 정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팔길이 원칙'이다. 예술과 관련돼 정부가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 도 의원은 "국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어야 함에도 박근혜정부는 지원은 안 하고 간섭만 했다"고 꼬집으면서 "이제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 국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고, 예술은 예술인에게 맡기고, 판단은 관객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군인이 등장하는 4개의 에피소드를 엮어 국가폭력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작품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무장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945년 일본의 자살특공대에 자원한 조선인 청년들,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에 식품을 납품하는 한국인을 납치해 살해한 무장단체, 그리고 2010년 백령도의 초계함 선원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 속 인물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저 살고 싶어요"라고 외친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을 다루는 작품은 그 자체로도 '나라를 나라답게'란 표어를 건 문 대통령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진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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