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아파트’와 서울시의 고도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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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13. 오전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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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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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장 같은 아파트 동간거리 9m 못 박은 서울시 갑질 행정을 시정해주세요.”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울시가 공공건축가를 통해 설계한 한남3구역 아파트 배치와 용적률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민원 글이 올라왔다.

서울시의 아파트 고도제한에 따른 피해와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인구밀도가 높고 산지가 많은 서울 땅의 비효율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아파트 고도제한은 비행안전 문제나 남산 조망권 훼손, 서울의 역사성 보존 등을 목적으로 최근 들어 규제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관료주의 행정’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일부 아파트는 동간거리가 짧아지면서 주민들이 일조권을 침해받거나 창문으로 맞은편 집이 들여다보인다며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헬리오시티. /사진=뉴스1

◆건폐율·용적률 제한 왜?


건축물 높이를 규제하는 법적 근거는 ‘건축법’상 건폐율과 용적률이다. 건폐율은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의 1층 면적, 용적률은 대지면적 대비 건물 각층의 면적 합계를 말한다. 이를테면 1000㎡ 부지에 세운 건축물의 바닥면적이 500㎡라고 가정하면 건폐율은 50%다. 건폐율이 높다는 건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의미인데 주거 쾌적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폐율과 용적률은 도시의 평면과 밀도를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규제 수단이나 건축기술이 발달하고 서울 집중화가 빨라지는 상황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한국뿐 아니라 근대 유럽의 독일이나 이탈리아에도 고도제한이 있었지만 인구 과밀로 인해 각종 부작용을 나타냈다”며 “낮은 건물을 여러개 짓는 대신 높은 건물을 적게 짓고 남는 땅을 공원이나 도로로 이용하는 것이 훨씬 활용도가 높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2014년 발표한 도시계획 ‘2030 서울플랜’에 따라 서울 아파트 최고층수를 35층으로 제한했다. 논란이 된 한남3구역의 경우 한강변이고 남산 경관을 가린다는 이유로 최고 22층, 높이 해발 90m가 적용됐다. 시행사인 조합이나 시공사는 사업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내려간 높이만큼 동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남3구역의 건폐율은 42%다. 통상적인 아파트 건폐율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수도권 신축 아파트의 건폐율은 20% 안팎이다. 지난해 완공한 서울 송파구 9510가구 규모 아파트단지 ‘헬리오시티’는 건폐율이 약 19%로 낮은 편임에도 입주 이후 일부 주민이 일조권 부족 문제 등을 제기했다.

더욱이 한남3구역은 서울 강남과 여의도를 잇는 도심 입지에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한국판 센트럴파크’ 개발 등의 호재로 ‘부촌 랜드마크’를 모토로 하는데 이런 고도제한이 아파트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불만이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서민아파트 대신 고급아파트


고도제한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문제는 일반아파트를 대신해 고급아파트를 짓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비버리힐스’라 불리는 용산 ‘나인원한남’은 90억원대 최고가 펜트하우스가 있는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다. 재개발 당시 부지 절반이 18m 고도제한 및 7층 층수제한의 규제를 받고 나머지 면적도 대부분 30m 이하 고도제한이 적용됐다. 짧은 동간거리를 피하면서 고도제한에 맞추려면 가구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는데 수익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분양가를 높여 초고가주택이 만들어졌다.

현재 재개발을 추진하는 서울 강남의 판자촌 ‘내곡동 헌인마을’도 인근 국정원에 대한 보안을 이유로 서울시가 인허가를 제한해 최고 높이 3층짜리 테라스하우스로 설계됐다. 한채당 가격이 50억원 안팎이 될 것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고도제한 규제가 일반아파트 공급을 가로막아 결국 상류층 부자들만 거래하는 고급주택을 양산하고 중산층이나 서민이 살 곳은 부족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수익성을 높이려면 고급화시켜 분양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조합과 건설업계는 서울시의 고도제한이 수익성을 저하시키고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지만 실상은 시민들도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사는 김진아씨는 “강남 부유층 주민들이 남산 조망권 침해를 이유로 강북에 고층아파트 건축을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며 “낡은 동네에 30년 넘게 살면서 재개발을 기다리고 최소 주거권을 침해받는다는 기분을 느낀다. 누구를 위한 고도제한인지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도 이런 논란을 의식해 내년 공개하는 ‘2040 서울플랜’에 시민을 참여시키고 아파트 35층 규제 완화를 중점 과제로 추진한다. 다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아파트 고도제한을 완화할 경우 조합과 건설사의 수익을 늘리고 투기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도제한은 시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해 정하는 것이지 공학적인 정답은 없다”면서도 “정비와 존치가 공존하고 역사성과 공공성을 확보해 옛길의 매력을 살리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라고 기본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8호(2019년 11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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