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전시장에 가봤더니

“현대미술 왜 하세요?”에 돌아온 유연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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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0:204,749 읽음

■ 차지량 <Good morning : Good night> 2019.3.5. ~ 3.29 스페이스 캔

차지량_GmGn 전시전경_1층 전시장 3

현대미술 작가에게는 금기된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현대미술을 왜 하세요?”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물어보는 사람에게도, 대답하는 사람에게도 난감한 이유는 질문의 바탕에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자본주의 사회의 패배주의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패배와 승리를 가늠하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자본이다. 혹은 자본의 빠른 축적을 돕는 효용성이다. 이런 시각은 일반적일뿐더러, 개인의 생존 의식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로 기능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현대미술 작가들은 그런 측면에서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행로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 종종 놓이게 된다.

차지량_GmGn 전시전경_2층 전시장 2

현대미술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이 곤란한 다른 이유는, 이 질문이 현대미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엮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중들이 현대미술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이것이 왜 예술인가?’ , ‘이것을 어떻게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들인데, 여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는 비평이 드물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술이라는 장르가 명쾌히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라는 부록 질문이 뒤따른다. 장르와 미학, 전시장과 장소성, 혹은 탈장소성 등 주로 미술판 내부에서 기존에 논의되어왔던 기준만으로는 현대미술의 다양성이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답변들도 명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다시 현대미술을 왜 하세요?”라는 질문을 작가들에게 토스하게 된다. 여기에는 현대미술이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창작자들의 의도라는 나름의 신념이 작용한다.
 
몇 년 전 차지량 작가의 관련 답변은 저는 미술이 재미있어서 합니다였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답변은 그동안 현대미술씬에서 보아왔던 작가들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예술판에서 관찰한 결과, 예술 자체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술가들 역시 사회인이고, 비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크고 작은 굴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은 흔치 않다. 오히려 예술가들 중에서도 추구하는 예술성의 경지의 틀에 맞추어 경직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차지량이 언급한 재미는 오락적 가벼움이 아닌 예술을 바라보는 관찰자와 창작자의 유연할 수 있는 자유에 가깝다. 그리고 그 유연함과 자유로움이 창작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반짝였다는 것이 관찰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ZKU 레지던시 베를린 현장 모습

스페이스 캔에서 329일까지 열리고 있는 차지량의 <Good Morning : Good Night>은 베를린 ZK/U 레지던시 보고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성북동에 있는 전시공간 스페이스 캔은 매년 베를린에 있는 ZK/U레지던시(residency: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혹은 스튜디오 프로그램으로, 북미와 유럽 등 해외를 비롯해 국내에도 국공립기관과 사립 레지던시들이 있다)와 협약을 맺고 국내 예술가를 자체적으로 선정하여 레지던시에 보내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차지량 작가는 작년 이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들을 전시와 공연의 얼개로 풀어냈다.

차지량_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_2018. 6.3 - 9.3_3채널 영상 설치_17분49초_ 2019_#2
차지량_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_2018. 6.3 - 9.3_3채널 영상 설치_17분49초_ 2019_#3
차지량_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_2018. 6.3 - 9.3_3채널 영상 설치_17분49초_ 2019_#1

1층 전시장은 작가가 실제로 생활했던 베를린 레지던시의 방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조성됐다. 전시장에는 3채널 영상이 상영된다. 작가가 베를린에서 보냈던 100일의 시간을 사흘의 방식으로 가다듬은 영상이다. 채널 1에서는 작가가 레지던시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흘러나온다. 채널 2에서는 스튜디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적 시선이 머무른다. 채널 3은 채널 12를 봉합하는 장치적 요소이다. 차지량 작가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베를린에서 나는 스튜디오에 주로 머물렀고, 창밖을 보거나 지붕 위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곳에서 시간은 여러 방향으로 흘러갔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떠올린 한 문장이 있었다."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
차지량_BGM Background Memory_영상, 음악, 조명설치, 퍼포먼스_2018

2층 전시장에서는 두 차례의 공연이 진행되는데, 이 공연은 전시보다 통합적이고 자기고백적이다. <BGM : Background Memory>라는 제목을 가진 공연에서 작가는 넓게는 작가 생활을 시작한 10년 정도의 시간, 좁게는 근 몇 년간의 시간 속에서 작가와 예술애호가,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의 시선을 유연하게 담아낸다. 자기고백을 근간으로 한 텍스트와 내레이션, 음악, 영상 등의 매체들로 자유로이 일렁이는 리듬의 물결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표현된다.

차지량_차지량_BGM Background Memory_앨범

차지량 작가의 작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차지량 이 있다. <뉴 홈>은 작가가 구성한 크루가 빈집을 점거하며 벌인 활동들의 기록이고, 여기에는 이런 활동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의 개인사가 작용한다. 이 작업은 후에 다큐멘터리와 판타지가 결합된 <한국 난민> 시리즈로 발전하게 되었다. 차지량의 작업을 지켜봐왔던 사람들이라면 2016년 갤러리 구에서 열렸던 <Never Mine, 안녕>의 낭독회를 잊지 못한다. 불운했던 과거를 읽어 내려가는 작가의 담담한 목소리는 퍼포먼스의 형식과 투명할 정도로 솔직한 개인사적 내용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록됐다. 음악을 좋아하고, 전시를 열심히 찾아보았으며, 피나 바우쉬의 공연을 관람하는 예술 애호가이자 작가로서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사건들(예술인 블랙리스트 블랙텐트 사건, 페스티벌 봄의 폐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의 직간접적인 경험들)과 개인사를 이어나간다. 이 고백의 주체이자 관찰자는 오롯이 작가 자신이다.  

차지량_GmGn 전시전경_1층 전시장 4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인 미디어 시대라는 용어가 흔해졌지만 이토록 솔직한 개인의 자기고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이전에 비해 얼마나 흔해졌을까? 차지량 작가의 작업을 관찰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이것이 현대예술의 의미와 유연함에 관한 하나의 힌트를 주었던 것이다. 현대미술이라는 무거운 담요를 털어 마지막 티끌 하나가 나올 때까지, 깨끗하게 속을 보여주는 작가의 투명함은 공연과 전시에 자유로운 리듬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전시와 공연을 실제로 관람한 후에야 느껴지는 호흡이다. 차지량 작가에게 전시를 통해 공유하고 싶었던 베를린의 모습에 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그의 대답이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작가의 진짜 모습, 즉 음악을 사랑하며 자신의 어두움과 밝음을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예술가의 정수를 드러냈다.    

Good Vibe
차지량 <Good morning : Good night>
2019.3.5. ~ 3.29
스페이스 캔 www.can-foundation.org

글Ⅰ조숙현(전시기획자) 사진 | 스페이스캔

조숙현은 현대미술 전문 서적·아트북 출판사인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를 설립했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고 영화주간지 Film 2.0과 미술월간지 퍼블릭 아트에서 취재기자를 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 등이 있으며,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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