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A씨(40·여)는 최근 코로나19에 확진된 6살 딸의 해열제를 약국이 아닌 동네 지인의 '나눔'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아이의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는 사이 동네 약국 여섯 곳을 수소문했지만 모두 품절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약을 구했고 아이의 열도 떨어졌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했다. A씨는 "할아버지께 말로만 듣던 전쟁통 물자부족이 이런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일간 확진자가 20만명 이상 쏟아져나온지 4주째 약국은 전쟁터가 됐다. 해열제 뿐만 아니라 기침약과 가래약 등 모든 코로나19 증상에 대응할 약품이 동났다.
200만명 재택치료자들은 물론, 혹시모를 감염에 대비해 미리 약을 구매하려는 사람들까지 약국으로 몰려든 결과다. 제약사들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지만, 의약품 공장 특성 상 생산라인 변경을 할 수 없어 물량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늘리진 못한다. 근본적으로 대유행이 정점을 찍고 확진자 수가 줄어야 초유의 의약품 품귀 현상이 걷힌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부터 일부 약국에서 드문드문 보인 의약품 부족 현상은 이달 거의 대부분 현장에서 품귀 사태가 빚어질 정도로 심화됐다. 동네 병원에서 처방해준 의약품을 약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서울 강남구 거주 B씨(53·남)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가래약이 없어 동네 약국을 전전했다"며 "처방받은 약을 정작 구매할 수는 없으니 기가막힐 노릇"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C약국 관계자는 "병원측에 이미 품귀된 의약품을 알려줘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처방 없이 구매가능한 일반약은 더 구하기 힘들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D씨(42세·남)는 "해열제는 물론 기침약, 가래약 등 코로나19 증상과 관련된 모든 의약품을 약국에서 구할 수 없었다"며 "이전에도 타이레놀 부족 현상이 있었는데 이번 품귀현상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초유의 의약품 품귀현상은 확진자 급증과 함께 재택치료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빚어졌다. 21일 0시 기준 재택치료자는 199만3986명으로 최근 5일간 200만명 안팎을 오간다. 이달 초만 해도 100만명을 넘지 못했지만 일간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면서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도 있지만, 물량이 적은데다 처방 대상 범위도 한정적이어서 대부분의 재택치료자들은 해열제와 기침약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켜야 한다.
제약사들은 생산량 확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시럽형 어린이 해열제를 생산하는 한 제약사 관계자는 "공장은 이미 풀케퍼(최대생산) 체제"라며 "월간 기준으로 평소대비 1.5배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한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부서는 주말 특근은 물론 철야도 하는 상황이다. 정부도 감기약 수급 특별관리에 돌입해 매주마다 각 제약회사로부터 생산-공급량 보고를 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산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받는 의약품 공장은 다른 업종 제조시설과 달리 생산라인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바꾸기 힘들어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며 "곧 대유행이 정점을 찍고 수요가 줄어드는 시점도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