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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 아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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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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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니, 저폰, 꼬레? 친니, 저폰, 꼬레??

 

내 친한 터키 친구는 아시아 인들은 모두 똑같이 생긴것 같다며 나를 저렇게 놀려대곤 했었다.

대충 들어도 "일본인이니, 중국인이니 아님 한국인이니?" 라는 질문 같다.

아마 터키사람들이 여행하는 아시아인들을 보면서 국적 알아맞추기를 저렇게 하는듯 하다.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터키어이기도 해서 나는 가끔 저 말이 노래처럼 생각나곤 한다

 

어제 우연히 영국에 있는 친구랑 통화차 시차를 맞추려고 리모콘을 돌리다가

"꼬레 아일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 감동이 가시지가 않아서 몇 자 남겨보려고 한다.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미국, 영연방을 제외한 가장 많은 숫자이다.

만 오천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 사망자만 700여명이고 그 중의 일부가 내가 살고 있는 부산 UN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사실 5년 동안이나 출퇴근하면서 UN공원을 지나쳤었는데 한 번도 들어가 묵념 비슷한 것도 해 본적이 없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전쟁 중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전쟁고아가 생겼던건지

슐레이만이라는 한 젊은 터키 병사는 전쟁통에 홀로  남겨진 아일라라는 아이를 우연히 발견하고 부대로 데려와 함께 생활을 했다. 아일라는 터키어로 달이라는 의미를 담은 여자이름인데 어린 아일라는 슐레이만을 아빠처럼 따르며 부대에서 함께 생활을 한 것 같다.

 

이렇게 전쟁 고아가 하나둘 씩 늘어나자 터키 군인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시설을 앙카라 학교라 이름 붙이고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앙카라 학교를 거쳤던 아이들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터키 군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덧 전쟁이 끝나고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한국에 두고 터키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슐레이만이 6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아일라를 찾게 되는 과정을 다큐는 담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여했으니 그의 나이도 이제 여든이 훌쩍 넘어보였지만 매일매일 아일라에게 신의 가호가 있길 기도해 왔다고 한다. 하루에 다섯번의 기도를 성심껏 하는 무슬림 친구를 여럿 두고 있어서 나는 그가 지난 60년 동안 매일 얼마나 진실한 기도를 해왔을까 라고 조금은 상상이 되었다. 세상천지 혈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린 소녀가 어떻게 살아갈지.. 부디 좋은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그는 그렇게 매일 알라에게 기도를 했을 것이다.

 

제작진은 앙카라 학교 출신의 전쟁 고아들을 모두 연락하게 되어 결국 아일라가 김은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일라 역시 터키 아버지를 찾고 싶어서 방송국에 몇 번을 찾아갔지만 사진 한 장 없이 타국의 아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저 흑백 사진을 내미는 제작진에게 건넨 아일라의 첫 한마디는 "저게 나에요?" 였다. 귀여운 아이는 백발이 자연스레 어우어지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고 자기앞에 벌어지는 이 현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얼마 후 터키참전용사들이 한국으로 초대를 되었고 그렇게 터키아버지와 한국딸은 재회하게 되었다. 설움이 복받치는 듯 아일라는 눈물을 토해냈고 터키 아버지는 말없이 한국의 딸을 안아주었다. 비극적인 전쟁터에서 터키 아버지와 한국 딸로 맺어진 그들은 인연은 60년의 세월도 비켜간듯 보였다.  

 

 

 

 

 

한국에서 여러 일정을 마치고 터키로 돌아가는 날 공항 의자에 앉아있는 아일라는 여든이 넘은 터키 어머니의 발을 주무르고 터키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일라에게 언제든 힘들면 우리가 너를 터키로 데려가마.. 라고 터키 엄마는 말했다.

 

 

 

두 달이 지나고 슐레이만은 한국딸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고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딸의 편지에 슐레이만의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전쟁이 남긴 고통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강한 그리움과 진실한 기도가 둘을 다시 만나게 한건 아닐까.. 아일라는 크리스찬이 되었고 슐레이만은 무슬림이었지만 종교의 이름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기도가 서로에 대한 기적을 만들어 낸게 분명해 보였다.

 

 

 

다큐를 보고 나서도 그 감동이 긴 여운이 되어서 나는 어쩌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기도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바라는 마음, 간절한 마음... 그 작은 마음들이 모여 기적이 된다는 것을 나는 또 믿게 되었고....

터키 친구들의 기도 하는 모습들이 자꾸 생각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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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stoy 세계여행

자유인, 지리학도, 여행자, 영어교사. 외국어와 세계여행, 책, 운동 그리고 향기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