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김순옥 할머니 발인제…"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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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2.07. 오후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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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하실 때 활동 매우 많이 하셨는데"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셨으면"
사흘 간 조문객 300여명…7일 발인제
"공장서 돈 벌어" 속아 위안부 끌려가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김순옥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6명이 남았다. 2018.12.07.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김온유 기자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김순옥(향년 96세) 할머니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떠났다.

7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에서 김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가족 및 나눔의집 관계자 등 총 13명이 자리를 지킨 발인제는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됐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우리 모두 어머니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기도문을 읽고 삼배절을 했다. 일동은 "하늘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외쳤다. 이어 스님이 염불을 외며 빈소를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사흘 간 치러진 김 할머니의 장례식 빈소에는 300여명이 찾아와 조문했다. 빈소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송월주 나눔의집 대표, 유은혜 교육부 장관 등이 보낸 화환이 놓여있었다.

발인제를 마친 관계자들은 운구를 차에 싣고 묵념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참석자들의 눈물만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 마련된다.

류지형 정의기억연대 기억교육국 팀장은 "김 할머니가 정정하실 때는 활동을 매우 많이 하셨는데 병실에 계신다고 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돌아가셔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다. 남은 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모(40)씨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하시는 걸 자주 봤다. 그 기억이 남아서 장례 소식을 듣고 이틀 전에 이어 오늘 또 찾아왔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지난 5일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0년 중국으로 가게 됐고, 흑룡강성 석문자 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김순옥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6명이 남았다. 2018.12.07. dahora83@newsis.com


김 할머니는 해방 후 귀향할 방법을 찾지 못해 중국에 머물다가 2005년 고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입소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해외 곳곳에서 증언활동 및 수요시위 참석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13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매춘부'라고 모독하며 '막말 노래'를 지어 인터넷에 유포한 일본 록밴드를 고소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6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와 함께 나눔의 집 최고령 할머니였던 하점순 할머니는 지난 10월 세상을 떠났다. 앞서 1월 임모 할머니와 2월 김모 할머니가 세상을 떴고 3월 안점순 할머니, 4월에는 최덕례 할머니가 노환으로 숨졌다.

ohne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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