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에 개 방치해놓고… 노른자 개발부지에 신종 ‘동물 알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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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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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운정3지구 일대. 인근 주민들은 사람도 거닐기 어려운 이곳에서 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는 2003년 2기 신도시로 지정됐지만 토지보상 문제와 경기침체 등으로 착공이 늦어졌다. 동패·목동·다율·당하·교하·와동동이 속해 있는 운정3지구 일대엔 아직 건물조차 올리지 못한 곳이 많다. 아파트 분양도 2008년 개발계획이 승인된 지 11년이 지난 뒤에야 본격화됐다. 그러다 보니 운정3지구 일대는 여전히 황무지다. 곳곳에 건설 자재들과 철골 구조물, 건설 폐기물 등이 겹겹이 쌓여 있다. 주변을 오가는 거라곤 흙먼지만 일으키는 덤프트럭뿐이다.

인근 주민들은 사람도 거닐기 어려운 이 메마른 땅에 몇 년 전부터 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람이 버리고 간 듯한 크고 작은 유기견들이 갈 길을 잃은 채 공사현장을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패동 인근에 거주하며 개인동물보호활동가로 일하는 손모씨는 이를 보다 못해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직접 유기견 구조에 나섰는데, 손씨가 구조 중 발견한 뜬장(사육하는 개·닭 등의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밑면에 구멍을 뚫어 지면보다 높게 설치한 철창)의 모습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적재된 판넬들 사이로 수 마리의 개들이 갇혀 있는 뜬장은 누군가 임의로 설치한 시설물로 보였다. 관리는 전혀 안 돼 있는 상태였다.

손씨는 “뜬장이 있다는 건 소유권이 있는 개들이라는 건데 전혀 보호되지 않고 있었다”며 “개발지역에서 개발보상금을 타내려는 목적으로 소위 ‘알박기’ 식으로 개들을 남겨둔 거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알박기란 현행법상 재산으로 분류되는 개를 개발 예정지에 데려다 사육하면서 개발보상을 노리는 신종 수법이다. 수목을 심거나 임대건물을 설치해 소유권을 주장하던 과거의 알박기와 비슷한데, 문제는 여기에 동원되는 개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이거나 견주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운정3지구 동패동에서 발견된 뜬장 안 개들의 모습.photo 개인 동물보호활동가 손모씨


혹한에 배변과 함께 방치

손씨가 발견한 뜬장 안 9마리의 개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 키만 한 높이의 뜬장 내부는 주민들이 추위를 염려해 챙겨 넣은 이불과 상자, 개들의 배변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커다란 사료 그릇엔 곰팡이가 폈고 그 아래엔 사료 봉지와 배변, 각종 생활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인근엔 개들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물 펌프가 있었지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얼핏 봐도 사람의 손길은 잘 닿지 않는 모습이었다. 동패동의 또 다른 주민은 “뜬장의 바닥 구조물 간격이 넓어 새끼 개들은 발이 빠지고 난리도 아니다. 온통 애기들의 배변 밭인데 구조할 길은 없어 가끔 밥만 대신 주곤 했다. 견주는 창고에 사료 두 포대 넣어 놓고는 알아서 밥 먹이라며 그냥 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동물보호활동가 손씨는 유기견 구조를 위해 지난해 12월 30일 동물보호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동물자유연대는 다음 날 곧바로 파주시의 협조를 얻어 뜬장 개들을 모두 긴급 구조했다.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 선임활동가는 “일부 개들은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장사상충을 앓고 있었고 혈장 수치는 굉장히 높게 나타났다. 혹한을 앞두고 자칫 동사할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구조 당시 현장 주변엔 견주가 사용하던 올가미, 뜰채도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에 대한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는 동물학대로 간주된다. 이 경우 지자체는 수의사 진단에 따라 해당 동물을 3일 이상 소유자로부터 격리조치할 수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를 근거로 시의 협조를 얻어 유기견들을 격리 보호 중인데, 견주가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일정 보호기간이 지난 후 동물들을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송지성 활동가는 “동물 학대 혹은 방치 가능성이 크다. 격리기간 동안 소요된 보호·치료비용을 견주에게 청구해 미납 시 소유권을 지자체가 취득하고 이를 동물단체에 이관하는 방식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개발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에 따르면 이 같은 일은 동패동에서만 두 번째다. LH 관계자는 “과거에도 한 시민분께서 15~20마리의 개를 현장에서 키웠는데 보상 문제까지 엮이면서 철거가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며 “강제집행 대상이 될 수는 없어 이번 건도 그렇고 철거 협조를 요청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뜬장 개들의 원주인은 개들을 경비견으로 키운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견주는 “원래 이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개발지가 되면서 모두 철거했다. 그때 남은 판넬을 현장에서 팔아왔는데 누군가는 판넬 도난을 감시해야 하니 개들을 ‘경비견’으로 둔 것뿐이다. 원래는 암컷과 수컷 각각 한 마리만 있었다. 이들이 뜬장 안에서 새끼를 낳으면서 숫자가 불어났다”라고 말했다. 수년 전까진 별 문제 삼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 경고도 없이 막무가내로 데리고 가면 어떡하냐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다. 견주는 “개발보상은 이미 다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간조선과 이야기를 나눈 1월 4일 오후 곧바로 지게차를 동원해 뜬장을 모두 철거했다.

현재 운정3지구 개발부지엔 기존 거주자들이 이사가면서 버린 유기견도 상당하다. 동물보호활동가들과 이곳 주민들은 신도시 준공에 앞서 이들 개에 대한 처리도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송지성 활동가는 “건물을 올리기에 앞서 LH와 지자체가 곳곳에 남아 있는 개들을 어떻게 포획하고 처리할지 논의해야 한다. 보호소를 설립하거나 동물복지위원회 등을 구성해 논의 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미 일부 유기견은 사람들이 설치한 올무에 걸려 죽거나 목줄에 목이 파이기도 했다. 이들 동물들이 알박기 등으로 악용될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경기도 남양주 왕숙지구에서 ‘알박기’에 활용되고 있는 개들의 모습. 온갖 오물이 뜬장 주변을 뒤덮고 있다.photo 세이브코리언독스


개체 수 늘려 가축 이전비 요구에 용이

이 같은 행태는 파주 운정신도시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니다. 2018년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남양주 왕숙지구에선 한 개농장주가 수백 마리의 개를 볼모로 삼고는 개발보상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 개농장주는 2003년 농장 운영을 시작, 10년 넘게 개를 팔아왔는데 그 수요가 줄면서 2018년 영업을 중단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마침 왕숙지구가 신도시로 지정됐고 나가더라도 보상은 받고 나가자는 게 개농장주의 계획이다.

이곳 개농장주의 알박기 행태를 보면 개를 알박기 수단으로 선호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토지보상법상 개발 예정지에서 가축을 사육하면 시행사로부터 가축 이전비 명목으로 돈을 지급받을 수 있다. 개는 가축에 포함될 뿐더러 여타 가축과 비교해 관리·사육이 용이하다. 몸집은 작고 번식력은 강하기까지 하다. 개체 수 늘리는 데에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등으로 왕숙지구의 개농장주는 과거 200마리에 불과했던 개들을 현재 400여마리까지 늘린 상황이다. 이곳 개농장주는 “한 마리당 10만~20만원으로 쳐줘서 약 8000만원 정도 보상해주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양주 연평리에 있던 개농장주는 개들 이전비용으로 약 1억6000만원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사육 환경이다. 지난 1월 5일 직접 확인한 왕숙지구 개농장의 경우 추위에 얼어붙은 각종 오물이 120여개의 뜬장을 뒤덮었고 개들에겐 음식물쓰레기가 먹이로 주어졌다. 개들은 씻지도 못한 채 한 뜬장에 기본적으로 3~4마리씩 뒤엉켜 있었다. 악취, 소음은 이곳 주민들의 주된 민원이다. 김나미 세이브코리언독스 대표는 “이곳처럼 환경이 최악인 곳은 처음 본다. 죽은 개들이 여기저기 속출하고 죽은 개는 냄비에 끓여 다른 개의 먹이가 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 왕숙지구에서 개들을 활용해 ‘알박기’ 중인 모습. 120여개의 뜬장이 열을 맞춰 있다.photo 이성진 기자


‘하남시 개지옥’ 사건에도 제재 방안 전무

이 같은 동물 알박기는 2010년 하남시 감일택지개발지구에서 처음 일어나면서 논란이 됐지만 현재까지도 별다른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하남시의 경우 일부 개농장주들이 개발부지 약 1만㎡(3000평)를 점유하고는 200마리의 유기견을 5년 넘게 방치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대다수 개들은 질환을 앓았고 곳곳엔 사체들이 널브러져 이른바 ‘하남 개지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남시가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이곳의 개들을 근처 임시 보호시설로 옮긴 건 2018년이 다 돼서였다.

경기도권의 한 동물보호소 소장은 “최근 개농장이나 번식장은 많이 줄었는데 그 반대급부로 동물을 수단 삼은 알박기 등의 행위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동물보호단체가 한 마리당 얼마씩 동물을 사겠다 해도 잘 팔지 않는다. 더 큰 개발보상을 노리는 거다”라고 말했다.

동물에 대한 소유권은 알박기 행위자에게 있다. 동물학대 등으로 처벌하기 위해선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 가축분뇨의 관리·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처벌한다 해도 그 수준은 과태료 부과에 불과하다. 남양주시청 관계자는 “환경법, 건축법 위반 혐의 등으로 행정처분은 내릴 수 있지만 실질적인 철거명령 등을 내리기엔 아직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앞서 파주 동패동에서 개인 구조에 나섰던 손씨는 “최근 부산과 인천 등 개발 부지에서도 동물 알박기가 성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인식 수준이다. 국회의 입법 활동과 행정기관의 단속·적발이 유일한 해결책이다”라고 지적했다.

파주= 이성진 기자 revea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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