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취약층 “고용”… 정부 지원 기간 끝나면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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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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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과 구직자를 지원하는 ‘취업성공패키지(취성패)’가 기업들이 단물만 빼먹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취성패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차상위계층(중위소득 60% 이하) 등 취약계층의 취업을 돕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2009년 도입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지원금을 부당 지급받는 등 악용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원금 끝나자 “나가라”

마케팅 회사에 근무하던 김모(32·여)씨는 지난해 5월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입사한 지 약 1년 만이었다. 취성패 지원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김씨는 13일 “지원금 지급 기간이 만료되고 해고된 직원이 9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취성패는 지원자에게 직업 상담과 직업훈련, 동행면접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수자에게는 소정의 교육비와 취업성공수당을 준다. 이수자를 고용한 업체에도 1년간 최대 720만원(지난해까지는 최대 900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이 구직자들에게 취성패를 입사 조건으로 내건 뒤 지원금만 받고는 해고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씨는 채용 면접 당시 회사로부터 취성패 이수를 종용받았다. 취업이 급했던 김씨는 취성패를 신청했다. 회사는 김씨를 먼저 고용하고 고용보험에는 가입시키지 않았다. 기업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근로자를 채용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취성패를 이수한 뒤에야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회사는 김씨가 근무한 1년 동안 고용촉진금 약 800만원을 지원받은 뒤에 김씨를 해고했다.

박성준(가명·29)씨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약 4개월간 한 소방설비업체에서 근무했다. 사장은 입사 조건으로 취성패 신청을 강요했다. 몸이 좋지 않아 병가 중이던 박씨는 지난 1월 초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았다. 지난해 12월 다른 직원이 권고사직을 당한 탓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원금을 받는 업체에 권고사직자가 있을 경우 지원금 지급을 중단한다. 박씨는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병가를 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취성패가 쉽게 악용되는 이유는 취성패 이수자가 고용보험에만 가입돼 있지 않으면 업체가 보조금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고용보험에 가입시키지 않은 채로 취직시키고 취성패 지원금을 받는 꼼수를 쓸 수 있다. 지원금 지급이 끝나면 일방적으로 퇴사를 강요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여기저기 새는 고용촉진지원금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취성패 등 고용촉진지원금 부정수급액은 6억6500만원이다. 원칙적으로는 지원금을 받는 사업장에 근로감독관을 파견해 일일이 통장내역과 근무 이력을 확인해야 한다. 취성패 이수 전에 월급을 받았는지 여부 등을 조사해 고용된 근로자가 무늬만 취성패 이수자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업주가 이를 작정하고 숨기면 적발해내기 어렵고, 감시 인력도 부족하다. 고용부는 취성패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자 올해부터 지원 방식을 바꿨다. 3개월 단위로 지급하던 지원금을 6개월 단위로 지급하고, 사업주에게 최대 900만원씩 돌아가던 지원금을 720만원으로 축소했다.

취성패뿐 아니라 취업취약계층 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된 다양한 고용 보조금 제도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다. 정부의 고용촉진지원 사업만 아니라 사회적기업 일자리 창출 지원 사업, 장애인 고용 장려금 등 공공기관의 보조금 관리 감독도 허술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9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운영한 ‘정부 보조금 부정수급 집중 신고기간’에는 85건의 부정신고가 접수됐다. 직원을 허위로 등록해 인건비를 지급받은 사례가 26건(30.6%)으로 가장 많았다. 현장을 일일이 단속할 수 없는 점을 악용해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지원금을 부정 수급하는 사업주가 적지 않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촉진지원금 부정수급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의 일원화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또 부정수급 적발 시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처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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