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대중문화 가로질러
‘시간여행’ 역사와 본질 탐구
“시간여행은 왜 필요한 걸까?”
제임스 글릭 지음, 노승영 옮김/동아시아·2만원
제임스 글릭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도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한 달 후 뉴욕에 폭풍이 몰아친다”는 문장은 귀에 익을 것이다. 1987년 펴낸 첫 저서 <카오스>로 과학이론인 ‘나비효과’를 대중의 언어로 바꾼 그가 이번에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특유의 지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과학과 철학, 대중문화를 가로지르며 시간여행의 본질을 탐구하는 그의 여정은 19세기 말에 출현한 최초의 시간여행자와 함께 시작된다.
‘시간’과 ‘여행’이라는 두 개의 낱말을 처음 이어붙인 사람은 <타임머신>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였다. 1895년 출간된 이 소설에서 잿빛 눈과 하얀 얼굴을 가진 시간여행자는 자전거 모양의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시간여행자는 의사, 심리학자, 신문사 편집장 등을 모아 놓고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과학강연회를 연다. 시간여행은 고사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니 소설의 주인공이 직접 배경지식을 설명하고 예상되는 논쟁에 대한 답변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바야흐로 증기의 시대, 기계의 시대였다. 기차가 시간 맞춰 역에 도착하고 전구가 밤을 낮으로 바꿨다. “라이엘의 지구과학과 다윈의 생명과학이 등장하고, 고고학이 골동품학을 벗어나 떠오르고, 시계가 완벽해지는 등 신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서로를 보강했다.”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와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 같은, 막 등장한 영화기술도 웰스에게 영감을 줬다. 산업혁명의 거대한 변화를 목도한 이들은 기술이 ‘진보한다’고 믿었다. 1900년을 맞이하는 축제를 준비하면서 다가올 20세기를 상상했다. 시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화살과 같고, 거스르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현대적 시간감각이 태동했다.
‘과학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장르는 웰스 덕분에 한층 풍성해졌다. 1926년 4월 미국의 괴짜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휴고 건스백은 “과학적인 사실과 예언적인 이상이 뒤섞인 매혹적인 소설”을 ‘사이언티픽션’이라 이름 붙이고 이런 작품을 소개하는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스>를 창간했다. 자신이 직접 쓴 소설과 다양한 신작을 소개하고, 웰스의 <타임머신>을 비롯해 에드거 앨런 포, 쥘 베른의 걸작을 재조명했다. ‘사이언티픽션’은 몇 년 후 ‘사이언스 픽션’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건스백은 파산해 발행의 주도권을 잃었지만, 잡지는 “오늘의 허황한 허구-내일의 엄연한 사실”이라는 모토로 80년 가까이 발행되면서 과학소설 장르를 주도했다.
사실 시간여행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웰스조차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다양한 ‘시간여행의 역설’ 때문인데, 대표적인 것이 ‘할아버지의 역설’이다. “내가 과거로 여행해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 댁을 방문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아직 어리고 결혼하지 않은 그를 쏘아 죽일 수 있는데, 그러면 나 자신의 출생도 막을 수 있다”는 게 이 역설의 골자다. 존재하지 않게 된 시간여행자가 어떻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겠는가.
철학과 논리학의 완고한 벽에 부딪혀 멈춰버린 ‘시간여행’에 손을 내민 것은 뜻밖에도 과학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드디어 뉴턴이 부여한 ‘시간의 절대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빛의 속도가 언제나 같다는 걸 알게 된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라면 시간 자체는 절대적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아인슈타인의 요점은 가속과 중력이 둘 다 시계를 상대적으로 느리게 하기 때문에 우주선에서 한두 살 나이를 먹고서 100년 뒤에 집으로 돌아가 조카의 손녀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제임스 글릭은 설명한다. 이후 이론물리학자 킵 손은 제자들과 함께 ‘웜홀과 타임머신’을 연구하고 “우주선이 웜홀의 한쪽 입으로 들어가 다른 입을 통해 과거로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제작책임자 겸 과학자문을 맡아 자신의 이론을 영화로 구현해 보여줬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