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주변국은 군사력 강화 골몰…한국만 '힘빼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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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14. 오후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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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군사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사시 국가 안보의 보루’와 ‘세금 낭비’라는 시선이 그것이다. 전자의 시선이 힘에 의한 국제정치를 추구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이성과 평화에 기반한 이상주의적 국제정치관과 같은 맥락이다. 

육군 신형 다연장로켓 천무가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정상회담 공동선언 발표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고조된 직후 한반도와 주변국의 군사적 행보는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군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군 전력증강 움직임이 주춤하고 있으나 주변국들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군비를 늘리는데 몰두하고 있다.

◆주변국들 “평화는 힘으로 지킨다”

일본은 북한 비핵화 조치와 관계없이 군비 증강을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판단과 동중국해 등에서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다.

루마니아에 배치된 미사일 방어체계 이지스 어쇼어. 일본은 이지스 어쇼어 2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록히드마틴 제공
이에 따라 일본은 내년도 방위비 규모가 22년만에 사상 최고치에 해당하는 5조엔(약 50조5000억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마이니치신문이 8일 보도했다.

방위성은 Δ중국의 군비 확장 Δ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 Δ자위대 장비의 고액화를 이유로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다.

우리나라의 국방중기계획처럼 일본 방위전략에 따라 무기도입 계획을 5년 주기로 정리하는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 2019~2023’에 따르면, 2000억엔(2조158억원)을 투입해 미국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어쇼어 미사일 요격시스템 2기를 2023년까지 아키타(秋田), 야마구치(山口)현에 배치하게 된다.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에 탑재된 SM-3 요격미사일과 탐지거리가 1000㎞ 이상인 LMSSR 레이더로 구성될 이지스 어쇼어는 유사시 한반도 전역을 감시할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1발당 가격이 30억엔(약 303억원)에 달하는 함정 탑재 탄도미사일 요격무기인 SM-3블록2A와 대당 가격이 1000억엔(약 1008억원)이 넘는 스텔스 전투기 F-35A 40여대 도입도 진행중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군대 보유 및 무력행사를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어 군비증강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 해군 항공모함 랴오닝호. 게티이미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에서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은 해공군력 증강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할 태세다. 중국은 지난 3일 다롄(大連) 조선소에서 최신형 구축함인 055형(1만3000t급) 3,4번함을 진수했다. ‘항공모함 호위병’으로 불리는 055형 구축함은 한국 해군 세종대왕함(1만t급)보다 큰 함정으로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수직발사대 112기를 갖췄다. 중국 해군이 편성을 서두르고 있는 항공모함 전단의 핵심으로 대함, 대공, 대잠수함 작전의 첨병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4월12일 남중국해에서 랴오닝(遼寧) 항모를 포함한 함정 48척과 전투기 76대, 장병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해상 열병식을 개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무력시위에 나선바 있다.

중국 공군은 러시아에서 Su-35 전투기를 도입하는 한편 2020년쯤 국산 스텔스 전투기 J-20을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중국 해군항공대도 사고가 잦은 J-15 함재기를 스텔스 기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FC-31로 대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기술이 미국의 F-22와 F-35, 러시아의 SU-75에 비해 뒤떨어져있지만 중국 특유의 물량공세가 이어질 경우 미국, 러시아와의 기술 격차는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

대만은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 이후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 강화와 무기 국산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패트리엇(PAC-3) 지대공미사일 제조와 관계가 있는 항공우주용 알루미늄 합금 부품 대형 정밀 주조기술을 대만 기업에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대만은 PAC-3 6개 포대를 도입하고 현재 운용 중인 패트리엇(PAC-2) 3개 포대를 PAC-3로 개량하는 사업을 2021년 마무리할 방침이다. 중국의 해상 위협에 맞서 1500t급 디젤잠수함 8척을 건조, 2026년부터 도입하는 계획도 추진중이다. 

러시아의 스텔스 전투기 SU-57. 202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실전배치될 예정이다. 위키피디아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마하 10(시속 1만2240㎞) 이상의 속도로 표적을 정밀타격하는 킨잘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했다. 2020년대 초에는 핵탄두를 탑재한 채 마하 5(시속 6120㎞)가 넘는 속도로 세계 전역을 3시간 내 타격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 극초음속 무기를 배치할 예정이다.

◆전력증강 삐걱대는 한국, 방산업계 위기감 증폭

반면 우리나라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군 전력증강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성하는 무기 개발 및 도입 사업에 대해서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형국이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인 철매-2 개량형(천궁 블록2) 요격미사일과 북한 장사정포 제압용 전술지대지유도미사일(KTSSM), 현무-2 탄도미사일과 탄두중량 2t짜리 벙커버스터급 현무-4 탄도미사일, 천무 다연장로켓 등 북한 핵, 미사일 위협 대응 전력 중 상당수가 사업규모 축소 또는 연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방부가 획득 절차를 재검토중인 무기체계가 200여개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12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철매-2 개량형 양산과 관련해 “전반기와 후반기로 분리해서 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내후년부터 7~8년 사업을 한다면 2022년(전반기)까지 (양산물량의 절반이) 우선 가고, (후반기에는) 새로운 것이 나오면 옮겨탈 수 있다”고 말했다. 송 장관의 발언은 지난 2월 109회 자신이 주관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확정된 양산계획을 또다시 재검토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검토 내용이 현실화되면 7개 포대를 양산하는 기존 계획은 3~4개 포대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인 철매-2 개량형이 공중 표적을 향해 시험발사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국방부의 움직임에 방위산업계는 당혹해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국방부의 군 전력증강계획은 일부 조정이 있었지만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큰 틀에서 중장기계획이 잘 지켜져왔다. 하지만 남북 화해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헛돈 쓰면 안된다”는 기조 하에 이미 결정된 사안까지 재검토 수순에 들어가면서 기존 계획을 믿고 자재 및 부품 구입, 생산설비 확보 등을 자체 비용으로 진행한 상황에서 양산계획이 갑자기 변경되면 재정적 손실은 물론 국가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는 것이다. 대당 가격 상승 등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무기도입사업과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조원 규모의 신형 해상초계기는 일사천리로 미국 보잉 P-8A 수의계약 도입을 결정해놓고 해상초계기 사업보다 규모가 작은 국내 무기 생산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미국제 무기수입을 늘리는 일본 정부의 정책으로 방위비 증액의 혜택을 보지 못한 일본 산업계가 무기생산을 포기하면서 품질 저하와 부품공급망 붕괴 등으로 자위대가 어려움을 겪는 사태가 국내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자국산 C-2 수송기 대신 미국제 C-130J 수송기 구매를 권고하고 있고, F-2 전투기 후속 기종도 미국제 구매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일본 방위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군용기 타이어 생산업체인 요코하마 고무는 2010년부터 방위산업 부문을 정리했고, 스미토모 전기도 2007년부터 군수 부문에서 손을 땠다. 2016년에는 F-2 전투기 개발 및 생산에 참여한 72개사 중 52개사가 폐업하거나 군수 부문을 정리했다.

방위산업 기반을 유지하면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적 능력을 식별하고,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과 두산 이 방위산업에서 손을 땐 상태에서 방위산업을 포기하는 대기업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안보정세가 급변했을 때, 급하게 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면 바가지를 쓰고도 꼭 필요한 무기를 확보하지 못할 위험이 높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호전돼도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비하려면 군사력 증강이 필수”라며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적 능력 확보에 초점을 맞춘 전력증강 로드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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