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노후비용 누가 부담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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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4. 오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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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자산 66% 차지 성장 과실 독차지한 상위 10%가 복지비용 기여해야
젊은 날에도 부당한 대우 소외계층, 노후비용 놓고 자식 세대와 다툼 벌여서야
노후대책이 막막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 이후에도 취업 전선에 몰린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베이비부머를 위한 한 취업박람회 모습. 박종식 기자


출산율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가 큰 사회문제가 됐다. 노동력 부족과 그로 인한 국가 생산력 저하와 사회보장 비용부담이 늘어 세대 간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출산율을 높인다고 수백 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성과가 없다. 이제 정부도 고령화 추세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력을 늘려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내용뿐이다. 기후변화 시대 한국의 인구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구조이다. 문제는 고령화하는 베이비부머의 급격히 증가하는 부양비를 누가 부담할까이다. 그 해결책은 미래세대와 함께 베이비부머 세대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림 1. 출생아 수 및 합계 출산율*

자료 : 통계청, 2019년 출생통계. * 합계 출산율 :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다. 연령별 출산율(ASFR)의 총합이며, 출산력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이다.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0.92명)를 기록하면서,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1.63명) 중 꼴찌가 되었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라는 것은 여성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구를 현상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우리나라의 인구감소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준다.

그림 2. 절대인구 변화(2017-2067)

자료 :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 2020. 8. 27.


출산율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유엔은 한 국가의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7%, 14%, 20% 이상이면 각각 고령화 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 2018년에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 2045년에는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37%를 차지하는 세계 1위 고령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의 출생률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로 2020년 5178만명이었던 우리나라 인구는 2028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67년에는 1200만명 이상 줄고,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보다 1900만명 이상 감소해 2067년에는 현재의 절반 이하가 될 전망이다.

그림 3. 생산연령인구 변화(2017-2067)

자료 :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 2020. 8. 27.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고령화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국가 생산력이 저하되고 사회보장 비용부담은 급격히 늘어 세대 간 갈등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 속도로 인구감소를 겪어내야 하는 우리나라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에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2006년부터 수백 조 원에 이르는 비용을 출산지원에 쏟아부었지만 저출산 문제는 날로 악화하고 있다.

결국 2020년 정부는 출산율 반전을 통해 인구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인구감소와 고령화라는 인구구조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변화를 예고하였다. 성과도 없는 출산율 제고에만 예산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고 출산양육비 지원 증가가 출산율 증가로 이어진다는 선례를 찾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인구감소 적응력 강화대책이라고 정부가 내놓은 것은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확대와 외국 인력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저출산을 대체할 노동인구 공급확대 정책뿐이다. 출산율 증가든 노동력 증가든 성장 기조에 기대어 늘어나는 소득세로 복지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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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 꼭 나쁜가


인구감소가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인의 90%가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기 시작한 기후변화의 중요한 해결책 중의 하나가 인구 조절이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80억에 가까운 인구는 그 자체로 이미 기후변화와 지구 환경에 위협적인 존재다. 그러나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인구는 단순히 사람의 숫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표 1. 2017 일 인당 온실가스 배출량(tCO2)

자료: IEA ‘연료 연소로 배출되는 CO₂ 배출량 2019’를 바탕으로 재작성. 시멘트 제조 등 산업공정으로 인한 배출량은 제외함.


2017년 세계 평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4.4t이었지만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은 1인당 2t 미만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였다. 한국인 1명이나 미국인 1명이 느는 것이 에티오피아인이 117명, 146명 느는 것만큼이나 기후에 부담이 된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었던 1992년, 우리나라는 감축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지만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 증가량이 연평균 3.3%씩 꾸준히 늘어서 2017년 기준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배출국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기후 악당으로 손가락질 받는 미국만큼이나 기후변화에 책임 있는 국가가 되고 말았다.

기후변화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높은 인구밀도로 인한 환경문제와 과도한 경쟁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평균 인구밀도(50명/㎢)의 10배를 넘어섰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안에서는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514명/㎢) 나라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이라지만 50년 동안 최저출생률을 반복해도 2067년 여전히 산업경쟁대상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 내 다른 국가보다 훨씬 과밀하다.

표 2. 각국의 2018 인구밀도(명/㎢)

자료: 통계청, 국토교통부, 유엔


표 3. 인구 및 인구밀도 예측

자료 : 통계청 2019 장래 인구 추계 재작성,* 중위 추계(출산율-중위/기대수명-중위/국제 순 이동-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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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베이비부머


인구 문제뿐 아니라 기후변화도 목전에 닥친 위기라는 점을 함께 고려한다면 결국 우리나라 인구 문제는 전체 인구수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인구 집단인 베이비부머의 수가 많아서 발생하는 단기적인 인구구조의 불균형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림 4. 우리나라 인구 피라미드의 변화

자료 : 통계청 통계지리서비스, 인구 피라미드


베이비부머는 일반적으로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인구집단을 가리키지만 1974년까지 좀 더 넓게 보기도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14%에서 31%에 이르기도 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 따라서 베이비부머의 출생(1955년~1974년), 생산활동(1980년 이후)은 우리나라 사회경제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베이비부머의 은퇴(2010년 이후), 고령화(2020년 이후)도 불가피하게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림 5. 연도별 출생아 수와 베이비부머

자료 : 삼성경제연구소


인구감소로 야기될 노동력 감소와 사회복지비의 증가도 심각한 문제지만 주택 교육 취업 교통 환경문제와 같이 과밀한 인구로 인한 경쟁도 문제다. 인구 규모가 아니라 인구구조가 문제인 우리나라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구과제는 노동이나 시장규모의 유지대책이 아니라 베이비부머 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부양비 증가를 해결하는 것이다. 현재보다 5배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부양비의 증가가 일자리와 주택을 둘러싸고 시작된 세대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란 염려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의 전제는 다음 세대의 소득으로 이전세대의 복지비용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다. 즉 고령 세대가 노후에 필요한 사회보장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면 다음 세대와의 갈등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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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재분배로 세대 갈등 막자


우리나라의 현재의 부는 사실 베이비부머가 생산활동에 참여한 시기(1980년 이후)에 축적됐다(그림 6).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명실상부한 개발국가가 된 데에는 고령에 접어드는 베이비붐 세대의 생산활동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자산을 축적한 베이비부머는 우리나라 어느 세대보다 부유한 세대이다. 따라서 베이비부머는 노후에 필요한 비용을 스스로 부담할 능력을 갖춘 첫 세대이기도 하다.

그림 6. 국내총생산 추이

자료: 한국은행, 국민계정을 참고로 재작성


그러나 베이비부머가 생산활동에 참여해 우리나라의 자산을 늘려가던 1980년부터 현재까지 베이비부머가 생산한 자산은 생산에 기여한 몫에 따라 정의롭게 나누어지지는 않았다. 1980년대 이후 벌어지기 시작한 소득의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소득 양극화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중 30위(2018)로 가장 심한 편이다.

그림 7. 한국의 소득 불평등(1933~2016)

소득 상위 10%(빨강)와 소득 상위 1%(파랑)의 총소득 점유율. 2016년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0% 이상, 1%가 12%를 가져갔다. 출처: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


자산의 양극화는 좀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우리나라 총자산의 66%를 차지하고 하위 50%는 2%에도 못 미치는 자산을 갖고 있다.(그림 8) 이러한 자산의 불균형은 베이비부머라고 다르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는 스스로 노후복지 비용을 지불할 만큼 자산을 가진 세대이지만 생산활동에 참여하던 시기에 불공정한 소득과 자산의 분배로 일부 자산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는 노후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베이비부머의 노후복지 비용을 베이비부머의 자산으로 충당한다는 것이 노후에 필요한 복지비용을 사회가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베이비부머의 노후에 필요한 복지비용은 당연히 국가가 감당해야 하지만 그 비용을 단지 다음 세대의 소득세만으로 마련할 필요는 없다. 베이비부머 1%가 이 세대 전체 자산의 12%를 차지할 만큼 소수가 부를 독식했다. 이들이 함께 생산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분배받지 못한 나머지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후부양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림 8. 한국의 자산 불평등(2000~2013)

출처: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


인사청문회 단골메뉴인 부동산과 학력 권력 세습 어디에도 세대 갈등은 없다. 재벌의 재산 상속은 세대 간 합작으로만 가능하다. 세대 간 다툼은 일자리를 두고 부모와 자식 간에 경쟁해야 하는 계층에게만 있다. 공정한 자산의 분배가 수십년간 미뤄지고 대를 이어 세습되면서 자산분배에서 소외된 계층만 세대 갈등의 당사자가 되어 버렸다.

베이비부머가 고령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늘어날 사회적 비용이 인구 문제의 핵심이다. 노동력의 부족이나 산업구조의 재편은 인구 문제가 아니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거나 해결할 방법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도 균형을 찾게 된다. 베이비부머가 생산활동에서 은퇴하고 국가의 복지에 기대야 하는 그 기간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인구 문제의 과제다.

베이비부머의 노후비용을 자식 세대가 떠안게 하지 않으려면 베이비붐 세대의 생산을 독점한 일부 베이비부머 계층의 자산을 전체 베이비부머의 노후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생산활동을 통해 쌓아놓은 자산은 다음 세대가 아니라 베이비부머의 자산가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지체된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젊은 날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계층은 결국 노후비용을 두고 자식 세대와 다툼을 벌여야 한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eprgsoo@gmail.com, https://blog.naver.com/sooep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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