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고관절 수술 두려워마세요" 1만명 걸음 찾아준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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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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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베닥] ㉙고관절 분야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조윤제 교수
"수술이 잘못 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 그냥 사시면…"

"이대로는 아파서 못 살아요, 죽어도 좋으니 제발…."

목발을 짚고 진료실에 들어온 75세의 할머니는 통증 때문에 생활이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중년에 왼쪽 엉덩이관절이 손상돼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잘못돼 인공관절이 골반의 반을 찌르고 있었다. 환자는 몇 번 재수술을 받았지만, 마지막 수술도 실패했다. 부셔진 인공관절이 골반 내 장기와 조직을 계속 눌러서 10여 년을 통증과 사투를 벌이며 지옥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조윤제 교수(62)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할머니의 통증을 생생히 느꼈지만 인공관절을 넣을 뼈가 남아있지 않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른 의사들도 그래서 손을 놓은 듯했다.

그러나 하루라도 통증 없이 살겠다는 환자의 눈물 서린 호소에 이를 물었다. 백방으로 뛰어서 뇌사자의 뼈를 구했고, 며칠 밤 수술 설계를 한 뒤 수술실에 들어섰다. 기존의 뼈를 잘라내고 뇌사자 뼈를 대체하고 여기에다 인공관절을 연결하는 대수술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연로한 환자가 어려운 수술을 견뎌냈다. 소원을 이룬 할머니는 날마다 조 교수를 위해 기도한다. 조 교수는 "절실한 마음으로 각오하고 수술하면 하늘이 도와주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조윤제 교수는 이처럼 지금까지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 통증 속에서 지내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던 환자 1만 여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서 일어서게 하고, 걷게 한 의사다. 환자 3명 가운데 1명은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 조 교수를 찾아왔다.

조 교수는 시련과 실패가 자신을 성장케한 보약이라고 믿는 의사다. 그는 경북 월성군의 농촌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고교 때 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육군사관학교나 해양대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24살 터울의 큰형이 의사 직을 제안했고 고3 막바지에 꿈을 바꿨다. 허나, 첫 시험에 탈락했다. 서울의 사돈댁에서 시험 준비를 하려 왔다가 책장에 꽂혀있던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을 폈다가 20권을 다 읽고 말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21살 위인 둘째형의 집에서 재수해서 마침내 경희대 의대에 합격했지만 의대 야구동아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수업 외 시간에는 모진 군기 속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조 교수는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의 권위를 자랑하던 모교 정형외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모자라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조 교수는 강원 고성군의 휴전선 바로 아래 부대에서 의무관으로 근무한 뒤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경희대 정형외과는 영국의 전설적 인공관절 대가 존 찬리의 제자였던 김영롱 교수가 인공관절 수술법을 도입하고 무균수술실을 열었으며 유명철, 배대경, 안진환, 이석현 등 쟁쟁한 고수들이 포진해 있어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조 교수는 전공의 4년 동안 집에 간 날이 손꼽을 정도였고, 꼴딱 밤을 새우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겨우 짬을 내서 결혼을 하고, 다시 병원으로 와서 잠 못 자는 삶 속에서도 연구에 매진해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은 모자란 점이 많다고 여겨 모교에서 교수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전공의를 마치고 경희대와 협력관계에 있던 동수원병원에 취직했다.

수원에서 열심히 환자를 보고 있을 때 스승인 유명철 교수의 호출이 왔다. 병원으로 들어가던 길 내내 조마조마했다. 국내 고관절 수술의 최고 대가였던 스승은 개원의사가 과잉 수술을 하거나 잘못된 치료를 하면 불러서 호통을 치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승은 놀랍게도 '교수의 길'을 제안했다. 조 교수는 상상하지도 못한 제안에 머릿속이 까매지는 듯했다. 엉겁결에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 같은데, 스승은 "경제적으로는 힘들 것이니 부인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네. 잘 상의해보게"라고 덧붙였다.

당장은 전임의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전공의뿐 아니라 전임의 급여도 그야말로 쥐꼬리 박봉이었다. 동수원병원 의사 급여의 1/3도 안됐다. 전공의 2년차 때 결혼한 숙명여대 음대 출신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서 자신을 뒷바라지했다. 스승의 제안은 당분간 그 궁핍한 생활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내는 임신해서 배가 불룩할 때에도 피아노 앞에 앉아야만 했는데….

조 교수의 부인은 "당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등을 떠밀었고, 조 교수는 다시 고생길에 들어섰다. 조 교수는 전국에서 몰려오는 유 교수의 온갖 환자들을 챙기며 수술 보조를 했다. 유명철 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절단사지 재접합 수술, 대퇴부 절단 수술 등에 성공했으며, 인공고관절 수술로 명성을 떨쳐서 전국 곳곳에서 환자가 몰려들었다.

조 교수는 이에 더해 전공의를 교육시키며 정형외과 행정업무를 수행했고, 밤에는 논문까지 작성해야 했으므로 집에 못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쩌다 귀가할 때도 새벽에 들어갔다 잠깐 눈 붙이고 나가야만 해서, 새로 이사 간 월곡동 아파트에서 "저 집 여자는 세컨드"라는 소문이 났고, 한 주부가 염탐하러 오기까지 했다.

조 교수는 7년 동안 유 교수의 수술을 도우면서 조금씩 자신의 환자들도 수술하며 온갖 고관절 환자들을 경험했다.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줬다. 병원장을 맡아 행정업무를 하면서 밤늦게까지 수술했고, 새벽까지 졸음과 싸우며 논문 지도를 했다. 조 교수는 스승이 졸다 깨다 되풀이하면서 자신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체득했다.

조 교수는 2000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교 의대에 연수 가서 윌리엄 말로니 교수 연구실에서 이론 체계를 세운 뒤 귀국, 본격적으로 자신의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조 교수는 대퇴골두무혈성괴사 환자의 관절을 살리는 각종 치료법을 도입해서 환자가 최대한 빨리 정상적 생활을 하도록 도왔다. 또 일본 사이타마의대병원에서 비구이형성증을 치료하는 수술을 배워와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강창수 교수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환자들에게 적용했다.

조 교수는 고관절의 각종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로 동료 의사와 환자들 사이에서 시나브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한해 400~450명의 환자를 수술하는데, 50%는 대퇴골두무혈성괴사, 30%는 고관절염이고 비구이형성증과 대퇴비구충돌증후군 환자가 각각 10% 정도다. 이 가운데 30~40%가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가 찾아온 환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환자들이 조 교수를 칭찬하고 고마워하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이야기를 전하니 손사래를 쳤다.

"제가 친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환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면 제게도 도움이 됩니다. 환자들이 자신의 병과 치료과정에 대해서 잘 알수록, 치료성과가 좋아지니까요. 환자가 확실히 이해하도록 최대한 노력은 하지만, 일부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설명을 썩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설명을 오래 하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조 교수는 아직 고관절 질환 환자들이 '잘못된 상식' 탓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고관절은 수술을 받으면 못 일어나고, 인공관절 수술은 10년 마다 한 번씩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참다가 병원 가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관절 수술은 척추나 무릎관절염 수술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습니다. 병을 조기에 치료할수록 고생을 덜 하며 관절의 가동범위도 넓어집니다. 인공관절 수술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세라믹 인공관절은 수술을 잘 받는다면 평균 40년 정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30대에 수술 받아도 평생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고관절 질환도 치료를 빨리 받을수록 좋으므로 사타구니 쪽이 저릿저릿하거나 불편하면 고관절 질환을 의심하고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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