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직장인 리포트 ②] "퇴근후 한잔" 부장님의 소통…"낮엔 뭐하고" 밀레니얼엔 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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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06. 오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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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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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수직적 소통으론 갈등해결 어려운데…기업 인사관리 10년전 그대로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임직원 간에 수평적 소통 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상사와 부하 직원이 정기적으로 커리어 평가 시간을 갖는 건 기본이고, 사내 플랫폼을 통해 임원진부터 말단 직원에게까지 '현재 진행 중인 업무'가 공개된다. 얼마 전 영국 런던 본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유니레버 모든 부사장과 인턴이 한 장소에 모여 하루 종일 회사가 나아갈 방향과 경영 전략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를 서구의 문화적 특성으로 치부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의 수평적 소통은 엄격한 인사평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최근 한 유니레버 일반 사원이 인사관리(HR) 담당 부사장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시스템 개선 방안을 건의했다. 이메일을 받은 부사장은 '커피 한잔 하며 자세히 듣고 싶다'고 해당 사원에게 답신을 보냈고 결국 만남이 이뤄졌다. 흥미로운 것은 소통의 시간 뒤에 '인증 사진'을 함께 찍었다는 사실이다. '수평화된 공적 커뮤니케이션(Formal Communication)'이 부사장 본인에게 매우 중요한 평가 항목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직장인에 대한 인사관리 중 소통 부문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피드백(Feed Back)'과 '코칭(Coaching)'이다. 이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이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 데 익숙한 전 세계 모든 밀레니얼에게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 이해 없는 제도 도입 잇달아 실패

유니레버처럼 주요 글로벌 기업이 밀레니얼 직장인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비해 한국 기업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한 소통 대책만 마련하고 있다.

최근 한 대기업은 젊은 직원들이 회식 등 술자리를 꺼린다고 판단해 친목 도모 행사를 스포츠 경기 및 공연 관람 등으로 바꿨지만 '소통'이란 목적 달성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이 회사 인사팀장은 "공연만 보고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얼마 전에는 '방탈출 카페'에도 가 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기성세대가 노력해도 세대 간 사이를 좁히긴 힘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기성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회사 동료 관계에 대한 인식을 비판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 직장인은 회사 동료를 '공적인 관계'(39%)라고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까워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면서 소통을 논하는 건 모순된 사고가 아니냐"는 게 기성세대 입장이다.

A사 본부장으로 재직 중인 이 모씨(46)는 "최고경영자(CEO)와 인사팀에서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소통을 강조해 수시로 부하 직원과 스킨십 기회를 갖는다"며 "저녁을 같이하자고 하면 사생활이니 개인 시간이니 하면서 본인이 피하는데, 나더러 뭘 더 어쩌라는 거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대기업 과장인 최 모씨(36)의 생각은 다르다. 최씨는 "나를 평가하는 입장인 상사와 이해관계를 떠나 사적으로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니냐"며 "차라리 이해관계에 충실한 공적 대화를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고 반박했다.

심지어 한 공공기관장은 20·30대 직원들의 마음을 얻겠다고 산하기관장들과 협의해 '미혼 남녀 만남' 행사를 열었다가 "회사가 직원 연애사에까지 개입하느냐"는 직원들 반발에 직면했다.

KT, 포스코, 한화 등은 직급이나 호칭 간소화를 통해 수평적 문화를 만들려고 했다가 제도 정착에 실패했다. KT는 2009년부터 5년간 직급 대신 '매니저'란 호칭을 사용하다가 2014년부터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기존 호칭 체제로 돌아갔다. 한화는 2012년 사원은 '씨', 대리부터 부장은 '매니저'로 부르도록 했지만 3년 만에 제도를 폐지했다. 포스코도 2011년 매니저·팀 리더·그룹 리더 등으로 직급 간소화를 시행했다가 6년 만에 기존 직급 체계로 복귀했다.

이에 대해 취업 포털 인크루트의 서미영 대표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임원 직급은 그대로 두는 등 사내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직급과 상관없이 프로젝트 리더를 맡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한 기업의 시도 또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제도를 도입한 한 대기업의 6년 차 직원은 "결국 상급자가 리더를 맡는 게 대부분"이라며 "후배 직원이 맡더라도 실제로는 선배 팀원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경철 사람인HR 컨설턴트는 "세대 간 상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새로운 제도만 도입해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새로운 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적이면서도 수평적인 사내 소통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승진'은 유인 요인도, 위협 수단도 못돼

본인 업무 성과나 회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자세히 설명을 듣고자 하는 밀레니얼 직장인의 성향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인사고과 방식에 대한 불만 정도를 묻는 질문에 54%가 '공개 원칙 없음'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20·30대 직장인 중 45.8%가 '인사고과 결정 시 상사와 면담하지만, 의견 교환이나 지도는 거의 없다'고 답했다. 대기업 계열 패션회사에 다니는 과장 정 모씨(36)는 "분기에 한 번씩 상사와 업무 성과 평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만,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인사고과 과정에서 '상사와 충분히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경우'에 불만이 있다고 답한 청년 직장인은 3%에 그쳤다. 단순 면담만 거쳤으면 34%, 면담이 없는 경우엔 58%가 불만이라고 답했다. 이는 상사와의 소통 수준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한 대기업 HR 담당 임원은 "요즘 젊은 세대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듣고싶어 하고, 실제 글로벌 기업들은 대면이든 영상이든 여러 수단을 통해 고위 임원들과 직원이 쌍방향 소통을 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관리자들은 여전히 '나도 모르는 것을 너희가 왜 궁금해하느냐'는 식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승진과 관련해서는 '관심 많다'(36%)와 '관심 없다'(34%)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리서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밀레니얼 직장인들이 승진에 목을 매지 않음을 보여준다"며 "결국 승진은 20·30대 직장인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유인이나 위협적인 무기가 아님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성과급 제도에 대해서는 '성과 비례'가 불만이란 답변이 28%였던 반면 '일률 적용'에 대한 불만은 17.3%에 그쳤다. 밀레니얼 직장인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휴가제도와 관련해 불만이 가장 많았던 건 '1회 사용 휴가일수 한정'(38%)이었고, 만족률이 높았던 건 '모든 휴가 한꺼번에 사용'(49%)과 '자기계발 휴직 신청'(47%)이었다. 그밖에 '회사 내 더 많은 면적을 할애해야 할 공간'으로는 '사원 휴게 공간'(37%)을 꼽았고, 가장 선호하는 회식 빈도는 '한 달에 한 번'(3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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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 서동철 기자 / 이유섭 기자 / 임형준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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