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 전셋값, 압구정 집값 다 올린 ‘재건축 실거주 의무' 결국 백지화… “부작용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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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7.12.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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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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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아파트에 2년 이상 실거주를 해야 조합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의 규제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발표한 6·17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의 핵심 내용 중 일부가 백지화된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애초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클 정책을 만들어 시장을 다 망가뜨려놓은 점을 지적하면서 지금이라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선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서울 강남구 대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치동 은마아파트/연합뉴스 제공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소위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당시 조 의원은 재건축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실수요자 중심 정책을 펴기 위해 이와 같은 규제를 발의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규제가 애초 실효성이 없는 규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애꿎은 세입자와 집주인의 피해가 모두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실효성이 전혀 없는 규제”라고 평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올 상반기 안에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예상됐기 때문에 조합 인가를 빠르게 받아 의무 거주를 피하겠다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무리한 규제가 집값과 전셋값을 올리는 결과만 초래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 규제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전셋값만 올려주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강남권의 오래된 재건축 단지는 집이 낡고 협소해 집주인이 대부분 외지에 살면서 전월세를 주고 있었는데, 조합 분양권을 얻지 못하고 현금청산될 것을 우려한 집주인들이 속속 실거주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의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실거주 2년을 채우기 위해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 사례가 속출하는데 임대차 3법과 맞물려서 작년 9~10월 전셋집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했다. 작년 가을 전세대란 당시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짜리는 9억원(10월 26일)에 전세로 거래됐다. 1년 전인 2019년 10월 전세 실거래가는 3억8000만~5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1년새 전셋값이 2배 가량 오른 셈이다.

재건축 사업 진행이 요원하다고 판단돼 신축 아파트 대비 집값 상승세가 거세지 않았던 압구정 일대 아파트 단지의 조합 설립 속도도 빨라졌다. 법안 통과 이전에 조합을 설립해야 실거주 2년 규제를 피할 것이란 계산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재건축 진행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집값도 올랐다.

압구정동 구현대 아파트 단지/조선DB

압구정 한양1차 전용면적 49㎡는 지난 4월 21억5000만원(1층)에 매도됐다. 작년 4월 매매가액인 14억5000만~15억2000만원과 비교하면 1년새 집값이 5억~6억원 가량 오른 셈이다. 신현대 전용면적 108㎡는 지난 1월에 30억원에 매도된 이후로 거래가 없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이 설립되면서 10년 보유, 5년 거주 요건을 채운 조합원 주택만 매매가 가능하다”면서 “사고 싶어도 매물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호가는 36억원 수준”이라고 했다. 1년전 매매가액(28억원)과 비교하면 마지막 실거래가 기준으론 2억원, 호가 기준으론 8억원이 올랐다. 압구정동에서는 올해 2월 4구역(현대8차, 한양 3·4·6차)을 시작으로 5구역(한양 1·2차), 2구역(신현대 9·11·12차), 3구역(현대1∼7, 10·13·14차·대림빌라트) 등이 잇달아 조합설립 인가를 얻었다.

압구정4구역의 한 조합원은 “손주사위나 손주며느리나 좋은 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안 났던 곳인데 조합이 생겼으니 일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데다가 서울시 입장도 풀어줄 건 풀어준다는 입장이라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압구정3구역의 한 조합원은 “미국 등 해외에 체류 중인 조합원들도 속속 도장을 찍어보내왔다”면서 “재건축이 되어도 피곤하다는 고령 조합원들도 일단 규제는 피하고 보자는 마음에 조합 설립 동의에 한 표 던졌다”고 했다.

중층 단지라 사업성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단지나, 조합원끼리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쳤던 단지, 소유주가 노령층이라 재건축 사업에 큰 관심이 없던 단지들도 조합 설립에 속도를 냈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와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강동구 길동 삼익파크맨숀,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제라도 불필요하고 실효성 없는 규제가 백지화되어서 다행”이라면서 “규제를 가할 때는 시장의 혼란만 부추기고 역효과가 나진 않는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고 있는 서초진흥 아파트.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 아파트에 조합설립 동의율 요건을 갖췄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던 모습/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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