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11일(현지시간)에는 베네수엘라 야권을 이끄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의 측근 의원 2명이 사의를 표했다. 이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져서다.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 3일이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와 가까운 해안 도시 라과이라에 용병들이 탄 배가 도착했다. 베네수엘라 군인들은 이들과 교전을 벌여 8명을 사살하고 2명을 체포했다. 현재까지 체포한 관련자만 30여 명이다.
문제는 처음 체포된 이들 중 미국인 용병이 있었단 사실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침입 작전을 계획한 이는 금세 밝혀졌다. 미국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으로 보안회사 ‘실버코프 USA’를 설립한 전직 군인 조던 구드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베네수엘라 해방을 위해 과감한 상륙 작전을 했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후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에 사건의 전말이 속속 보도되기 시작했다. 구드로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베네수엘라 전 장군 클리베르 알칼라와 짜고 작전을 준비했단 게 골자다. 둘은 ‘베네수엘라 정권 타도’라는 목표를 세웠고, 이웃 콜롬비아에서 용병들을 훈련했다. 이 과정에서 과이도 의장 측 베네수엘라 야권 인사들도 접촉했다. 포린어페어스(FA)에 따르면 구드로는 "마두로를 잡아 미국으로 데려가려는 목표”를 세웠다.
마두로와 지극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알칼라는 그렇다 쳐도, 미군 출신 구드로는 왜 베네수엘라에 자신의 명운을 걸었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WP, FA 등 미 언론들은 그가 마두로에 걸린 현상금 1500만 달러(약 184억원)는 물론, 베네수엘라에서 새로 정권을 잡게 될 이들로부터 받을 여러 혜택을 노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테러’ 혐의로 기소하고, 그의 체포에 결정적 제보를 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마두로가 콜롬비아 마약밀매조직과 함께 미국에 대규모 코카인을 유통했다는 혐의였다. 다른 나라 정상에 현상금을 내건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미국인이 체포되자 마두로 대통령은 기세가 등등하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꼬투리를 단단히 잡아보겠단 심산이다. 병력을 풀어 관련자를 모두 색출하겠다고 나섰고, 체포된 용병의 자백 영상까지 공개했다. 영상 속 미국인은 배후를 묻는 말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 대답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미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우리가 개입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며 비꼬듯 반박했다.
미 언론들 역시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작전이 너무 허술했던 데다 용병들 역시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간 중남미에 여러 간섭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 이번 일은 미국과 관련 없을 것”(뉴스위크)이란 것이 중론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과이도 의장이다. 마두로의 독재적 행보 탓에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번 일로 외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서다. 구드로는 과이도 의장과 거래했다는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계속 흘리고 있고, 구드로를 만난 것이 확인된 측근들은 잘려나갔다. 과이도는 이를 부인하며 마두로가 이 사태를 자신의 정권을 지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마두로의 기세가 워낙 등등하다.
FA는 “계속되는 경제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 저유가까지 겹쳐 국민은 큰 고통을 겪고 있지만, 마두로는 이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마두로나 트럼프가 아니라 음식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분노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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