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천은 어떻게 수백억원 들여 ‘똥물 하천’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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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5.09. 오후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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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9~2014년 500억원 들여 생태하천 조성공사

환경단체 “하천 시설물 물흐름 막아 수질 악화”

산란 잉어떼 수백마리 떼죽음에도 파주시는 뒷짐

주민들 “휴식공간은 커녕 악취로 창문도 못열어”



파주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교 아래에서 공릉천의 오염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생명의 기운이 넘쳐야 할 하천의 물색은 까맣고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잠시 서있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팔뚝 만한 잉어들은 산란철을 맞아 그나마 용존산소가 많은 물가 수초에 떼지어 몰려 애처롭게 펄떡였다. 지난 8일 찾은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교 인근 공릉천은 하천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가장자리엔 최악의 수질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이 득실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에 비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황오리, 해오라기, 할미새, 물떼새 등 다양한 철새를 볼 수 있는 탐조코스로 이름이 높던 봉일천교의 명성은 빛이 바랬다. 지난 4일엔 잉어 50여마리가 누런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떠오르는 등 3월 초부터 잉어들의 떼죽음이 계속 이어져 ‘물고기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는 게 현장에 동행한 정명희 파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봉일천교에서 2㎞가량 상류 쪽으로 농업용 보가 설치된 구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누런 똥물이 드넓은 하천을 가득 메워 멀리서도 구토가 나올 만큼 심한 악취를 풍겼다. 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로나 왜가리, 가마우지조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경기 양주에서 발원해 고양·파주를 거쳐 한강으로 흐르는 ‘한강 제1지류’ 공릉천이 생명이 살 수 없는 ‘똥물 하천’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수백억원을 들여 이곳에 생태하천 조성 공사를 한 뒤 되레 수질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정 국장은 “지난 4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케이-본(K-BON·대한민국 생물다양성 관측 네트워크) 주니어팀이 한강 담수어류 분포 조사차 이곳에 왔다가 조사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왕숙천, 곤지암천, 공릉천 고양 구간에 이어 파주에 도착한 조사팀은 ‘충격적이다. 마치 하수도에 들어온 것처럼 최악’이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 인근 주민들은 공릉천 인근 축사와 공장 등에서 흘러드는 분뇨, 오폐수, 생활하수 등 오염원 유입은 그대로 둔 채 물흐름을 방해해서 생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생태하천 공사 명목으로 물속과 둔치에 조성한 각종 구조물이 하천의 유속을 느리게 만든 탓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파주시는 깨끗한 수질관리와 주민 여가공간 확충을 명분으로 2009~2014년 약 500억원을 들여 파주시 조리읍~교하읍 송촌리 16㎞(총면적 396만㎡) 구간에 생태하천 공사를 벌였다. 당시 가동보 1개를 비롯해 교량공 12개를 설치하고 둔치에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 생태학습장, 7㎞ 규모의 조수호안 소공원 등을 조성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사업이란 이유로 환경영향평가마저 간이절차로 진행했다.

6년째 공릉천과 문산천 등 파주지역 하천에서 어린이 생태수업을 해온 파주생태문화교육원 이상민(38) 교사는 “공릉천 수질이 과거에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생태하천 공사 뒤 최악이 됐다. 3급수에서도 잘사는 잉어가 죽어나갈 정도면 다른 물고기들도 살 수가 없다. 이대로 두면 강바닥이 모두 썩어 물고기는 물론 철새도 끊겨 죽음의 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임아무개(65)씨도 “냄새가 나서 운동은 커녕 창문을 열 수도 없는 지경이다. 얼마 전 비가 온 뒤에는 소똥이 하천에 둥둥 떠내려왔다. 시설 설치도 좋지만 수질개선이 먼저”라고 말했다.

참다 못한 파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18일 파주삼릉 인근 공장에서 폐수를 방출하는 현장을 적발해 파주시에 신고했다. 정명희 사무국장은 “파주시에 항의했는데 ‘비가 안와서 발생한 일반적 현상’이라며 손놓고 있다. 악취가 진동하고 물고기떼가 죽어나는데 원인 규명 의지가 없이 비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짚었다. 조영권 파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은 “하천 정비사업 이전에는 둔치를 이용해 농사도 짓고 물흐름이 있어 이 정도로 오염이 심하지는 않았다. 오염원 통제를 철저히 하고 사실상 보 구실을 하는 ‘징검다리 보’를 허물어 물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파주시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대책반을 꾸려 관련 부서가 합동조사중이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뒤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정부가 500억원을 들여 실시한 공릉천 생태하천 조성사업때 만든 봉일천 징검다리. 물흐름을 정체시켜 수질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 조영권 상임의장(왼쪽)과 정명희 사무국장이 공릉천 현장에서 오염 원인에 대해 이야기을 나누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공릉천에서 폐사한 잉어 50여 마리가 폐기물 처리업체 트럭에 실려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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