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Korean paper, 韓紙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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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닥나무를 주재료로 고유의 기법으로 떠서 만든 한국 전래의 종이.

한지체험박물관

한지(韓紙)는 '한국의 종이'라는 뜻으로 닥나무를 주재료로 물과 닥풀을 혼합해 손으로 떠낸 종이이다. 종이 제조 기술은 중국을 통해 전래되었으나, 자체적인 기술 개량 노력을 통해 종이 제작 기술과 품질이 발전했다. '외발이' 또는 '한지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고유 기법으로 제작되는 한지는 특유의 광택과 치밀하고 질긴 조직, 오랜 보존성 등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한지는 오랫동안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일상 생활 속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또 창호지나 장판 등 생활용품 및 지승공예 등 여러 공예품의 제작 등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다.

한지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한국의 종이(韓紙)'라는 의미 외에도 추운 겨울철에 만들어진 종이 품질이 좋다고 하여 한지(寒紙)라고도 했으며, 하얀 색상을 가리켜 백지(百紙)라고도 불렸다. 또한 '닥'을 주 원료로 사용하여 순우리말로 '닥종이'라고도 한다.

한지의 특징

한지는 1년생의 어린 닥나무가 주재료로 사용되며, 제조 과정은 중국의 걸러 뜨는 방식과 달리 외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외발뜨기'라는 고유 기법과 함께 도침(陶枕)이라는 다듬기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한지는 섬유질이 매우 섬세하고 가늘며, 밀도가 치밀해 질기고 강한 품질로 일찍이 인접 지역으로부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천년 이상 유지되는 높은 한지의 보존성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의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4년 추정)을 비롯하여 여러 불경과 고문헌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역사

한지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원은 알려지지 않으나, 2~7세기경 중국으로부터 제지기술이 전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기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 기존 기술을 개량하여 최초의 종이다운 종이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비슷한 시기인 3~4세기경 한반도에서도 이 기법이 유입된 것으로 추측되며, 4세기경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도입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유력하다. 한반도에 전래된 제지기술은 풍토에 맞게 개량되어 독창적인 한지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신라시대 이미 희고 곱게 다듬은 종이를 중국에 수출했다고 하며, 수공업의 전문화와 인쇄술 및 제지술의 발달이 이루어졌던 고려시대에는 '고려지'가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또한 한지의 수요와 생산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조선시대인 15~16세기로 여겨지는데, 고려시대의 지소(紙所)가 폐지되고 관영제지소인 조지소(造紙所)와 조지서(造紙署)가 설치되어 국가 차원에서 종이의 품질과 수량을 관리하며 한지 발전에 힘썼다. 7세기 중엽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닥이 주원료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적 발간에 따른 수요가 급증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 뽕나무, , 갈대 등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15세기 후반 무렵 국가재정 결핍 및 관리의 부정부패 등으로 관영제지수공업은 쇠퇴해갔으며, 대신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제지업, 그리고 민간에서의 제지생산이 활발해졌다.

제조 과정

한지의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닥나무 채취: 매년 한로(寒露) 를 전후한 11월에서 2월 사이 그 해 자란 1년생 닥나무 가지를 베어내 사용한다.

② 닥무지(닥 찌기): 껍질 벗기기를 보다 쉽게 벗기기 위해 가마에 물을 붓고 찌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닥무지'라고 한다.

③ 닥 껍질 벗기기: 닥무지 과정이 끝나고 다 쪄진 닥나무의 껍질을 벗긴다. 수피를 벗겨내 햇볕에 말리면 흑피가 되며, 이것을 찬 물에 10시간 동안 불린 후 겉껍질을 칼로 벗겨내면 청피가 나오며, 청리를 다 벗겨내 하얗게 만든 것이 백피 혹은 백닥이다. 흑피나 청피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한지에 누렇고 검은 반점이 생겨 품질이 저하되게 된다.

④ 물에 담그기: 피를 부드럽게 하고 백피 속에 남아있는 불순물 등을 제거하기 위해 1~2일 동안 백피를 찬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다.

잿물에 삶기: 물에 충분히 불린 백피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솥에 넣어 삶는다. 삶는 물로는 잿물을 이용한다. 전통적으로는 볏이나 메밀대, 콩대 등을 태운 재로 우려낸 잿물을 사용했는데, 알칼리성을 띠고 있는 잿물을 사용함으로써 섬유 속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고, 섬유 고유의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양지(洋紙)가 산성인 데 비해, 한지는 중성(pH7)을 띄어 더 높은 수명과 보존성을 갖게 되었다고도 한다.

⑥ 씻기와 쐬우기: 삶은 백피를 흐르는 물에 담가 잿물기를 씻어낸 후 2~3일 정도 고루 뒤집어주며 햇볕이 골고루 내리쬐도록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백피가 더욱 하얗게 표백된다.

⑦ 티고르기: 세척과 표백이 끝난 백닥을 건져내 원료에 남아있는 표피, 티꺼리 등 잡티를 손으로 골라내 마무리한다.

⑧ 두드리기(고해, 叩解): 불순물 등을 제거한 닥 섬유의 물을 짜낸 후 닥틀이나 나무판 등과 같은 평평한 곳에 올려두고 1~2시간 정도 골고루 두들겨 섬유질이 물에 잘 풀어질 수 있도록 한다.

⑨ 해리(解離): 고해가 끝나면 물에 섬유를 풀어 막대기로 잘 저어 고루 분산시켜 종이를 뜰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여기에 닥풀즙을 넣은 후 잘 섞어준다.

⑩ 종이뜨기: 원료와 닥풀이 잘 혼합되어 있는 지통에 종이 뜨는 발을 담그어 전후좌우로 흔들어 종이를 떠낸다. 떠낸 종이 사이사이에 왕골을 끼워 나중에 떼 내기 쉽게 해준다.

전통기법인 외발뜨기는 하나의 줄에 발틀의 끝부분을 매단 후 먼저 앞 물을 떠서 뒤로 흘려버리고, 옆 물을 떠서 반대로 흘려버리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여 종이를 떠내고, 떠낸 종이 2장을 반대 방향으로 겹쳐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방법이다. 외발뜨기는 닥 섬유가 격자 형태로 얽혀 질기고 강한 종이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종이 한 장을 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⑪ 물빼기: 떠낸 종이를 켜켜이 쌓아 무거운 돌이나 지렛대로 눌러 하룻밤 동안 물기를 빼준다.

⑫ 말리기: 물기를 빼낸 종이를 한 장씩 떼내어 말린다. 옛날에는 온돌이나 흙벽, 목판 등에 넣어 햇볕에 말렸으나(일광건조), 최근에는 철판으로 된 면에 열이나 증기를 가해 데운 다음 그 위에 종이를 펴서 말리는 철판건조도 이루어지고 있다.

⑬ 다듬기(도침, 陶枕)·다리기 및 염색: 종이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생긴 각종 주름을 펴주는 작업으로, 주로 디딜방아나 방망이를 사용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섬유 사이의 구멍이 메워져 종이가 치밀하고 매끄러우며 광택을 갖게 된다. 도침과정 이후에도 주름이 남아있는 경우 도침을 반복하거나 다리미로 다림질하여 완전히 펴 한지를 완성한다.

색을 더할 경우 이 단계에서 염색이 진행되는데, , 치자나무, 오배자, 홍화 등의 천연 염료가 많이 사용된다.

종류

한지는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며, 재료와 제작방법, 용도, 색과 크기, 생산지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이에 따른 한지의 종류는 대략 200여 종에 이른다. 대표적인 한지의 종류로는 다음과 같다.

◎ 원료에 따른 분류
- 고정지(藁精紙): 귀리 짚을 원료로 하여 만든 종이
- 마골지(麻骨紙): 마의 대를 잘게 부수어 섞어 만든 종이
- 마분지(馬糞紙): 짚을 잘게 부수어 섞어 만든 종이
- 상지(桑紙): 뽕나무 껍질을 섞어 만든 종이
- 송피지(松皮紙): 닥나무에 소나무 속껍질을 섞어 만든 종이
- 태지(苔紙): 물이끼를 섞어 만든 종이
- 백면지(白綿紙): 다른 원료와 목화를 섞어 만든 종이

◎ 크기·두께에 따른 분류
- 각지(角紙): 가장 두꺼운 종이
- 강갱지: 넓고 두꺼운 종이
- 대호지(大好紙): 품질이 그리 좋지 않은 넓고 긴 종이
- 장지(壯紙): 좁고 짧은 종이

◎ 용도에 따른 분류
- 간지(簡紙): 편지 등에 쓰이는 두루마리 종이
- 관교지(官敎紙): 나라 또는 관아에서 교지 명령을 내릴 때 썼던 종이
- 장판지(壯版紙): 방바닥을 바르는 종이
- 창호지(窓戶紙): 문을 바르는 종이
- 표지(表紙): 책의 표지로 썼던 종이

◎ 색채에 따른 분류
- 운화지(雲花紙): 백색의 닥종이. 구름과 같이 희다는 데서 나온 명칭으로 눈처럼 흰 종이라는 뜻에서 '설화지'라는 명칭도 사용된다.
- 죽청지(竹靑紙): 대나무 속껍질처럼 희고 얇은 데서 나온 명칭
- 황지(黃紙): 고정지 또는 그와 같이 누런 빛깔의 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