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채로 분쇄, 눈뜬 채 도살…우리가 먹는 동물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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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5. 오후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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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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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모자를 쓴 채 활짝 웃는 닭, 너른 초원을 뛰어다니는 돼지. 정육점이나 고깃집을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우리가 먹는 동물들, 오로지 먹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은 정말 그림에서와 같은 삶을 살다 죽는 걸까요?

■ "죽어라 낳거나 죽어라 찌거나"

한국인이 1년 동안 무려 10억 마리를 소비하고 있는 닭부터 볼까요.

닭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달걀을 얻기 위한 산란계와 고기를 얻기 위한 육계입니다. 인간의 쓸모에 따라 워낙 다른 품종으로 개량되다 보니 산란계는 죽어라 알을 낳는 일 외엔 쓸모가 없고, 육계는 죽어라 살을 찌우지 않고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알 낳는 산란계가 수놈으로 태어나면 어떨까요.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해 만든 품종인데 알을 못 낳는 수컷으로 태어났으니,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결국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습니다. 주로 마대자루에 떼로 들어가 깔려 죽거나 분쇄기로 들어가 갈려 죽습니다. 최근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도 못 낳고 맛도 없는 쓸모없는 수평아리는 폐기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수평아리들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현대 축산업의 이면을 드러내는 호주 다큐멘터리 ‘Dominion(2018)’의 한 장면.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수평아리들이 의식이 있는 채로 분쇄기로 떨어지고 있다.

상품성이 없기에 이들은 편안히 죽을 처지도 못 됩니다. 상품으로 출하되는 동물들은 가스나 전기를 이용해 도축됩니다. 죽기 전 의식을 잃게 해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물보호법에도 규정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도축의 단계까지 가지 못 하는 수평아리들에 대한 처분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결국 국내 양계업계 상당수는 병아리의 의식이 있는 채로 마대자루에 넣어 깔려 죽이거나 분쇄기에 갈아 죽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암컷은 공책만한 넓이의 닭장에서 매일 한 개 씩, 1년 반 동안 4백여 개가 넘는 달걀을 낳습니다. 더 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 수평아리와 마찬가지로 분쇄기에 갈려 죽거나 싼값에 동남아 등에 팔려 나갑니다. 고기를 먹기 위해 기르는 육계는 암수 구분 없이 살아남긴 하지만 한 달 안에 도축됩니다.

■ 한해 11.5억 마리 도살… 반려동물 140배

돼지는 어떨까요. 수퇘지는 특유의 냄새, '웅취'를 없애기 위해 어릴 때 거세합니다. 마취하려면 수의사를 불러야 하는데 이게 다 돈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작업자가 손으로 잡아당겨 떼어냅니다. 양돈업계에서는 "돼지가 어려서 크게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론 극도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아 심하면 죽기도 합니다.

이빨과 꼬리도 자릅니다. 앉고서는 게 전부인 좁은 사육 틀(스톨)에서 살다 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돼지를 공격하게 되는데 이때 생긴 상처는 돼지의 상품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마취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국내 한 돼지농가에서 새끼 돼지의 꼬리와 이빨을 자르고 거세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마취 없이 이뤄진다. 국내 대부분의 농가, 심지어 동물복지 농가에서도 비용과 시간 문제를 이유로 마취없이 외과적 처치가 이뤄지고 있다.

축산동물들은 죽을 때까지 편히 눈 감기 쉽지 않습니다. 동물보호법은 도살 시 고통을 최소화하고,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로 넘어가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스와 전기를 이용해 기절시킨 뒤에도 여전히 상당수 동물은 다시 깨어나 의식이 있는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난해 국내에서 식용 목적으로 도축된 동물은 11억 5천만 마리가 넘습니다. 이는 국내 반려동물 8백만 마리(추정)의 140배가 넘는 수입니다.

■ 오직 인간을 위해 태어나고 죽는 삶

우리가 먹는 축산 동물들의 삶. 어차피 죽는 삶이라지만, 이것이 곧 사는 동안 모든 고통을 감내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오로지 인간을 위해 태어나고 살고 죽는 생명인 만큼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불필요한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경남 거창에 위치한 한 동물복지 농가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정부는 동물복지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2018년 동물복지 전담 부서를 만들었지만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 위주입니다. 지난해 관련 예산은 반려동물에 88억 원이 집중돼 축산동물에는 4억 원이 전부였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동물 관련 법안 50여 개도 대부분 반려동물과 실험동물 위주입니다.

KBS는 오늘(5일)부터 이틀 동안 축산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보도합니다. 이와 함께,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동물이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동물답게 클 수 있도록 하자는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 의미와 한계가 무엇인지 짚어 봅니다. 이 같은 노력이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 이로운 일이기도 한 이유도 알아봅니다.

문예슬 (moons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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