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대 등 주요대학 "수능최저기준 폐지 거부"…교육부에 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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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4.03. 오후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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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커지는 대입정책

교육부가 주요 대학에 수시모집 전형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 기준' 폐지를 권고한 가운데 연세대를 제외한 서울 주요 대학이 2020학년도에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연세대와 라이벌인 고려대가 수능 최저학력 기준 유지 대열에 합류하기로 하면서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치를 2020학년도 입시 수시전형에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고려대로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학들과 협의는 물론 공식적인 정책 발표도 없이 교육부가 지방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식 대입정책을 남발하고 대학들의 입시 방침까지 엇갈리면서 2020학년도 대입을 앞둔 현 고2 학생들의 입시 준비에 혼란이 가중된다.

고려대 핵심 관계자는 3일 "2020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최종 입시요강은 다음주 중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할 경우 수시 지원자가 두 배 이상 급증하는데 신입생 선발 시스템상 이들 모두를 면밀히 평가하려면 물리적 한계가 생긴다"며 "이는 학생 선발의 공정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뿐 아니라 경희대·서강대·성균관대·중앙대·한국외국어대 등 서울 주요 대학 입학처 역시 수능 최저학력 기준 유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입학처 관계자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폐지되면 모든 고등학교의 내신등급이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는데 고등학교별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다른 것이 현실"이라며 "이 같은 차이를 보정할 객관적 지표가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는 당초 교육부가 '대입전형의 단순화' '수시 강화' 등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에 따라 추진한 정책이지만 예비수험생들의 혼란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연세대가 주요 대학 중 교육부의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 권고에 '나 홀로' 부응하기로 하면서 내신이 좋지 않은 비평준화 명문고에 다니는 수능 성적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고려대 쏠림 현상이 예고됐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폐지되면 연세대 수시 경쟁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고등학교 수준별 내신등급 차이를 변별할 장치가 사라진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고려대에 지원하는 것이 유리해져 상위권 학생들의 고려대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내신은 좋지 않지만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높은 명문고 학생들은 수시를 지원할 수 있는 선택지가 사실상 한 곳 줄어든 셈이다.

2020학년도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당장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서울 강남의 한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는 김 모군(18)은 "나라에서 일주일 전에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한다고 했다가 말이 바뀌고, 수시를 강화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는 정시를 늘리라고 그런다"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중계동에서 고2 자녀를 키우는 이 모씨(47)는 "교육정책이 이렇게 오락가락해서 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대학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정책을 남발해 대입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들과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당국의 일방적인 정책 통보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하순 교육부는 공문을 통해 각 대학에 "2020학년도부터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라"고 권고했을 뿐 사전에 충분한 협의는 없었다.

또 최근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서울 주요 대학에 느닷없이 정시 확대를 요구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정시·수시 비율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발표도 없이 교육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엎었기 때문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대학과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정시 확대 카드'로 졸속 진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 반대' 청원에는 3일 오후 기준 8만6000여 명이 서명했다.

[김희래 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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