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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클래식 12. 파마산 치즈 마카로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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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이

공식

2020.04.23. 09:4595 읽음

안녕하세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소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프로그램 노트에 담긴 클래식'을 맛있게 각색하여 올리고 있으니 원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2020년은 음악의 성인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열과 고뇌,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음악가의 상징인 베토벤은 와인을 매우 사랑한 미식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음식과 그 음식에 어울리는 곡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베토벤의 모습이 표지에 담긴 책 [출처: www.gutenberg.org]

납중독에 의한 청력 상실을 이겨내고 평생 자신의 삶과 투쟁하며 운명 교향곡, 월광 소나타, 비창 소나타, 합창 교향곡 등 클래식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의 명곡들을 작곡해낸 베토벤이 가장 좋아하던 점심 메뉴는 바로 '파마산 치즈를 얹은 마카로니' 요리였습니다.

파마산 치즈 [출처: www.regiano-italianherkut.fi]

우리가 '파마란 동네에서 나온 치즈인가?'라고 생각하기 쉬운 '파마산 치즈 (Parmesan Cheese)'의 원산지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피렌체 중간에 위치한 작은 도시 '파르마 (Parma)'입니다.
'파르마 지방의..'란 뜻의 이탈리아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Parmigiano Reggiano)'가 원래 이름인 이 파마산 치즈는 원산지 보호법에 적용되어 파르마 지역에서 만들어진 치즈가 아니면 절대 이 이름을 붙이지 못합니다.

파마산 치즈는 최소 1년 이상 숙성된 치즈로 숙성 연도에 따라 '지오바네 (Giovane, 1년 숙성)', '베키오 (Vecchio, 2년 숙성)', '스트라베키오 (Strabecchio, 3년 숙성)', '스트라베키오네 (Strabecchione, 4년 이상 숙성)', 이렇게 4개의 종류로 나눠지며 숙성 연도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풍미와 가격이 달라집니다.

마카로니 면 [출처: www.webstaurantstore.com]

또 이탈리아에는 300개가 넘는 다양한 파스타 면의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국수 모양의 '스파게티 (Spaghetti)'를 비롯하여, 두툼한 롱 파스타인 '페투치네 (Fettuccine)', 마치 만두피처럼 최소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넓은 '라자냐 (Lasagna)', 나비 넥타이 모양의 '파르팔레 (Farfalle)', 나선형으로 꼬여있는 짧은 면 '푸실리 (Fusilli)', 원통 모양으로 생겨 끝이 사선으로 잘려진 짧은 면 '펜네 (Penne)'...

이탈리아의 수많은 파스타 면들 중 짧은 대롱 모양으로 생겨서 주로 샐러드 안에 차갑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면이 바로 '마카로니 (Macaroni)'입니다.

파마산 치즈 마카로니 (Makkaroni mit Parmesan-Kaese) [출처: www.kuechengoetter.de]

이탈리아 전체 요리 중 하나였던 마카로니에 치즈 조각들을 곁들였던 음식은 미국과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까지도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음식이 바로 '맥 앤 치즈 (Mac and Cheese)'입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파마산 치즈를 사용하여 이 요리를 많이 만들어 먹는데요. 파마산 치즈를 곁들인 마카로니란 뜻의 '마카로니 밋 파르메산 케제 (Makkaroni mit Parmesan-Kaese, 파마산 치즈 마카로니)'가 이 음식의 독일어식 이름이자 베토벤이 가장 사랑한 점심 요리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중 [출처: National art centre]

하이든에게서 음악을 배우기도 하였던 베토벤이 연주 여행을 다니며 작곡과 피아노 연주로 유럽에서의 명성이 높아져가고 있던 1796년, 26세의 나이에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801년, 베토벤은 그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청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음악 활동은 커녕 사회 생활조차 하기가 힘들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2년, 요양을 와 있던 비엔나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 (Heiligenstadt, 현재는 비엔나 시의 한 구로 속해져있습니다.)'에서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게 됩니다.

피아니스트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된 베토벤은 이 유서 이후 작곡에만 더욱 더 몰두하게 되었는데요. 그는 가정부에게 점심 요리를 주문해놓고 작곡을 하느라 음식이 식어가거나 불어 터지는 것도 잊은 채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매우 잦았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매우 값비싼 재료였던 파마산 치즈와 마카로니 면으로 조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음식에 비하여 잘 불고, 굳어버리면 '심폐 소생'조차 불가능한 요리인 '파마산 치즈 마카로니'를 베토벤이 요구한 날에는 가정부가 어느 타이밍에 음식을 조리해서 내놓아야 할지 베토벤의 눈치를 매우 보면서 불안해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가 직접 연주하는 Beethoven Sonata for Vn & Pf No.4 in a minor, Op.23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번)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4번 (Sonata for Violin & Piano No.4 in a minor, Op.23)'은 베토벤이 죽음과 삶에 대한 경계선에 선 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하던 1801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밝고 따뜻한 특징을 지녀 '봄'이란 부제를 갖게 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5번과 함께 작곡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으로 대변될 만큼 너무나도 다른 음악적인 특징을 가졌기에 같은 작품 번호로 발표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4번과 5번, 밝고 명랑한 '삶', '봄'과 같은 생동감 넘치는 5번 소나타와 달리 비통함이 전 악장에 흘러 넘치는 4번 소나타는 귓병이 악화되어가는 베토벤의 불안함과 혼돈의 심리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곡, 특히 1악장 '프레스토 (Presto)'는 베토벤이 동경하던 음악가였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5번 (W. A. Mozart Sonata for Violin & Piano No.35 in A Major, KV.425)'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곡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매우 서정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2악장 '안단테 스케르쪼소 (Andante Scherzoso, Piu Allegretto)'와 3악장 '알레그로 몰토 (Allegro Molto)'가 곡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간결하면서도 박력 넘치고 화려한 베토벤만의 음악을 그리고 있습니다.
'청각'이라는 음악가로서는 생명과 같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가던 젊은 천재 음악가의 심경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작곡을 하느라 음식이 식어가는 것도 모르는 음악가를 앞에 두고 그를 부르지도 못하고 음식을 자신이 먹어버릴 수도 없어 안절부절하는 가정부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기도 합니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 계속 눈치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가정부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절박한 마음이 파마산 치즈 마카로니와 함께 어우러져 우스우면서도 가여운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는데요.

베토벤 4번 소나타가 너무 무겁게 생각되는 사람드은 가정부와 불어터져가는 파마산 치즈 마카로니,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점심 요리뿐만 아니라 모든 걸 잊은 채 작곡에만 집중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그려가며 이 곡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 원 글은 https://blog.naver.com/tschiny/220949320339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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