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빼앗긴 겸상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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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1. 오후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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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배우 진 티어니가 떠오른다. 1943년 임신 중이던 티어니는 풍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그 후유증에 첫아이가 여러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감염경로는 우연히 다시 만난 팬을 통해 밝혀졌다. 과거 본인이 풍진에 걸렸지만 티어니를 만나기 위해 격리소를 빠져 나왔다며 애정을 과시한 것이다. 군부대에 위문하러 온 ‘가장 좋아하는 배우’에게 바짝 붙어 대화하고 신체를 접촉하며 풍진 바이러스를 옮긴 것이었다. 이를 들은 티어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뒤 그는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기도한 바 있다고 전해진다.

좋아하는 배우의 삶을 고통의 수렁으로 밀어넣은 팬. 심지어 본인의 병을 알았고, 의사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접촉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너무 화가 났다. 나는 다짐했다. 전염력 높은 병에 걸리면 자가격리를 철저히 하여, 타인의 안녕과 공공의 안전을 해치지 않겠다고.

하지만 보균자인지 본인도 몰라 전파자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록 이와 관련된 걱정이 커졌다. 사스나 메르스는 잠복기에 2차 전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됐지만, 코로나19는 다르다. 잠복기간 중에도 전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호흡기 증상, 발열, 근육통 등이 없었는데 코로나19 양성으로 확진된 사례도 발견됐다. 두려워졌다. 만약 내가 어떤 우연한 접촉으로 병에 걸렸는데, 증상이 없어 스스로 병자인지 모른 채 돌아다녀 누군가 피해를 입는다면?

확진자가 되면 나이, 성별, 동선 등의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된다는 사실도 두려움을 자극한다. 동선이 공개된 확진자의 일상을 보고 과한 (심지어 감염병과 관계없는) 해석이나 평가를 얹고, 어떤 장소 방문에 대해 비웃거나, 음험하게 추측하며 희롱하는 등의 일이 왕왕 벌어졌다.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것을 당사자가 본다면, 가뜩이나 아픈 사람이 더욱 아프겠다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동네 확진자의 집주소, 얼굴 사진 등을 공유한 온라인 커뮤니티도 있었다.

물론 당국에서는 그러라고 공개한 게 아니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하고, 시민들은 방역에 협조하여 함께 병의 확산을 막자는 취지였다. 이에 관해 한국이 잘 대처했다는 유수 외신과 타국 의료계의 평가도 있다. 다만 기존에 시행된 바 있는 체계가 아니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나이와 성별을 제하고 동선만 공개하자는 의견,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특정인의 동선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드니 장소와 시간을 중심으로 취합된 정보를 공지하자는 논의가 지금이라도 반영되길 기대한다.

과도한 비과학적 우려로 자영업자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현상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해당 식당에서 확진자와 겸상했을 시 전염 가능성이 있는데, 동선 발표 뒤 ‘지금은’ 안전한 식당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편견을 가지는 것이다. 방역소독까지 마친 뒤에도.

모두들 힘들고, 그만큼 예민해져 있다. 산업이 위축돼 휴직하는 직장인,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힘든 시기를 버티는 비정규직·프리랜서, 임대료 때문에 막막한 자영업자 등, 이 힘든 시기가 빨리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데 한마음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도 커지는 것 같다. 혹시라도 내가 사태 진화에 걸림돌이 되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특히 평소 마스크 잘 착용하고 자주 손 씻으며 철저히 바이러스의 틈입을 막았는데, 무증상 전파자와 겸상 한 번 했다가 덜컥 감염되어 과하게 비난받으면 억울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다른 환자들도 너무 비난하지 않기로 한다.

그나저나 요즘 겸상이 그립다. 정을 나누는 일은 왜 이리 감염에 취약한 것인지. ‘죄인’ 될 걱정 없이 마음껏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봄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혼밥을 뜬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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