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무장하고 밤샘, 항공기 부품 뜯자 히로뽕 400㎏ 쏟아졌다

입력
수정2021.09.08. 오후 9:26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국내 최대 1조 3000억 마약 압수
부산세관 ‘콜롬보’ 이동현 주무관


강철로 만든 항공기 부품인 ‘헬리컬 기어’를 뜯자 히로뽕 총 404kg이 우르르 쏟아졌다. 베테랑 조사관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히로뽕을 숨겼던 곳은 경기도의 한 허름한 창고. 올 7월 초 관세청 부산본부세관 소속 이동현(39) 주무관이 국내 유통을 앞둔 시가 1조 3000억 원 상당의 멕시코발 히로뽕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이 주무관을 포함한 부산본부세관 직원들이 찾아낸 히로뽕은 국내 마약류 범죄 사상 최대다. 성인 1350만 명이 투약 가능한 양이다.

통관 첩보 받고 수출입 기록 모두 뒤져

국정원·검찰 공조, 경기도서 찾아 내

관세청 개청 50년 만에 특별 승진 영광

“국민 안전·건강 보호 위해 최선 다할것”

세관 직원들은 헬리컬 기어 안에서 마약을 꺼낸 뒤에도 행여 모를 마약 탈취 난동에 대비해야 했다. 방검복을 몸에 두르고 가스총까지 든 채 공장에서 밤을 지새운 것이다. 관세청과 국가정보원, 검찰, 호주연방경찰, 미국세관의 공조가 빛난 수사였다.

지난 7일 오전 부산본부세관에서 만난 이 주무관은 언론과의 첫 대면 인터뷰에서 국내 최대 규모 마약 적발의 공로를 동료와 공조 기관의 덕으로 돌렸다. 이 주무관은 “다른 직원들의 노력과 국정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의 공조가 없었다면, 이번 마약 적발은 단독으로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관세청이 1970년 개청된 이후 약 50년 만에 처음으로 특별 승진 대상이 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돼 압수된 마약은 총 60kg. 지난해 국내로 밀반입된 전체 양의 7배에 달하는 마약을 한 번에 찾아낸 것이다.

이 주무관은 주말은 물론 밤낮으로 매달린 국내 최대 마약 밀반입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되짚었다. 밀반입 첩보 입수부터, 적발까지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이 마약은 원래 멕시코에서 한국을 경유해 호주로 반출될 예정이었다. 앞서 밀수출된 마약이 호주 세관에서 적발돼 통로가 막히자 이 마약은 국내로 유통될 가능성이 컸다.

올 5월 부산본부세관은 호주연방경찰과 미국 세관으로부터 마약 밀반입 첩보를 넘겨받았다. ‘호주 세관에서 항공부품인 헬리컬 기어 내부에서 약 500kg에 달하는 마약을 적발했다’는 것이다. 부산항을 통해 국내로 반입된 헬리컬 기어 부품 안에도 수백kg의 마약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때부터 이 주무관을 포함한 부산본부세관 직원들의 ‘사막에서 바늘 찾기’가 시작됐다. 우선 첩보 내용과 국내 수출입 된 수십 만 건의 화물 기록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다. 밤낮으로 수출입 정보를 확인한 결과, 드디어 관련 부품 수입 기록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진짜 추적은 그때부터였다. 밀반입돼 국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의심 화물’을 찾아내야 했다. 이 주무관과 세관 조사국 직원들은 화물 보관 기록이 있는 경기도의 한 창고를 추적해 현장을 덮쳤다. 아쉽게도 허탕이었다. 밀수업자가 세관 추적을 피해 전국 곳곳을 돌며 화물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이다.

국내 이동경로 추적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이 주무관의 추적은 난항에 부딪혔다. 이때부터 세관과 국정원, 검찰의 본격적인 공조가 시작됐다. 수사기관이 돌아가며 화물차 이동 경로를 파악했고, 세관은 이 정보를 토대로 화물이 보관된 최종 장소를 확인했다. 경기도 외곽의 한 인적 드문 대형 창고였다.

부산세관은 국정원, 검찰과 협조해 현장을 덮치고 화물을 압수했다. 헬리컬 기어 9기는 중장비를 이용해 공장으로 옮겨졌다. 강철로 된 헬리컬 기어를 잘라내는 것 역시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특수 장비로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 사이 부산본부세관 직원들은 시가 1조 원이 넘는 마약 탈취 습격을 대비해 중무장을 하고 공장 주변을 둘러싸고 밤을 새웠다. 장마철이 겹쳐 비까지 내리는 끔찍한 날씨였다.

결국 헬리컬 기어 안에서 1조 3000억 원 규모의 히로뽕을 찾아냈다. 부산세관은 마약을 압수하고 히로뽕을 국내로 들여온 A(35) 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향정)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검찰은 범행을 지시한 호주 국적의 B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세관 측은 1조 원이 넘는 이번 히로뽕 밀반입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 등 마약 조직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주무관과 가족들의 걱정이 더욱 큰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주무관은 앞으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마약류 사건 업무를 놓지 않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애초에 보복이 두려웠으면 하지도 않았을 수사”라며 “수사했던 동료들과 국정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국민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마약류, 테러 물품, 불법 식의약품 등 반입 차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