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쳐다보다… 명동 1층 공실률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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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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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상권의 부진…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7일 낮, 서울 지하철 명동역 6번 출구에서 우리은행까지 이어지는 ‘명동8길’. 2년 전만 해도 ‘폭탄 세일’ ‘중국 여행객 열렬 환영’ 같은 문구가 매장 앞에 붙어있고, 호객꾼들이 중국·일본말을 던져가며 외국 관광객을 붙잡던 한국의 대표 거리였지만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상점 세 곳당 두 곳꼴로 상점 불은 꺼졌고, 유리창엔 ‘임대 문의’ ‘사정상 쉽니다’ 같은 종이만 붙어 있었다.

7일 오후 손님들이 찾지 않아 한산한 서울시 명동 거리에선 상가를 내놓고 유리창에‘임대’안내문을 붙여놓은 건물들이 곳곳에 보였다. 코로나 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에 이어 내국인 손님까지 사라지면서 명동 거리에는 문 닫은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본지 기자가 ‘명동 거리’를 비롯한 1.2km가량을 걸으며 1층 상가를 헤아려보니 249개 상점 중 149곳이 공실(空室)이거나 휴업 중이었다. 전체의 60%. 2층 이상은 더 심각해 건물 전(全) 층이 통째로 빈 경우도 많았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올 1분기(1~3월) 서울 명동 상가의 공실률 38%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오후 2시쯤, 한 화장품 가게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이모(53)씨는 “계약 기간에 묶인 채 휴업하던 곳들이 계약이 끝나면 줄줄이 폐업한다”며 “예전엔 밤 늦게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곳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한국의 대표 거리 명동(明洞)이 추락하고 있다. 10대부터 80대까지 모든 이가 찾고, IMF 외환위기도 비켜 간 명동은 이제 옛 기억이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30~40년째 명동을 지키는 토박이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외국인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명동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29년째 ‘카페 코인’을 운영해 온 김석수(62) 사장은 “2000년대 초반까진 명동에 개성 있는 가게가 많았는데, 그 뒤로 외국인을 겨냥해 화장품·의류로 상권이 굉장히 단조로워졌다”며 “모든 마케팅 포인트를 외국인에게만 맞추고, 내국인에겐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손님들이 홍대·건대·압구정 같은 부도심으로 분산됐다”고 했다. 황동하 명동관광특구 협의회장은 “외국 관광객 82%가 명동에 들를 정도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에게 올인했던 게 문제였다”며 “한국 사람은 와서 화장품 1~2개 사는데 외국인은 100만~200만원어치씩 사다 보니, 종업원도 다 중국말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가서 명동에 일본인이 사라졌을 땐 중국인이 왔고, 중국 한한령으로 중국인이 없을 땐 일본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외국인 거리’가 된 명동은 서서히 내국인을 밀어냈다. 카페 ‘가무’를 운영하는 최경용(60) 사장은 “노점 문화에 익숙한 중국인들은 밖에서 음식을 먹고, 이런 가게에 들어와선 제대로 시키지도 않는다”며 “40명이 들어와 ‘잠깐 쉬다 갈 테니 한 잔만 달라’거나, 중국인 가족이 베이스캠프처럼 자리 맡아놓고 쇼핑 짐을 수시로 가져다 놓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내국인들도 점점 오지 않더라”고 했다. 명동8가길의 한 공인중개소 사장은 “명동 하면 중국인 관광객부터 떠오르는 게 문제”라며 “코로나가 풀릴 것이란 기대는 있어도, 중국에 대한 국민 정서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명동을 더 이상 찾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새 명동의 정서는 서서히 사라졌다. 1994년부터 아이닥안경을 운영해 온 김영근 대표는 “옛날엔 ‘나 명동 갔다왔어’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거리’를 다녀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가업(家業)까진 아니어도 역사가 있는 음식점이나 금은방, 양복점, 안경원도 많았던 한국의 고급 거리, 영화배우들이 거닐던 거리라는 정서가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는 “단골 손님들 중에는 ‘추억이 사라졌다’고 우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한때 땅값이 평당 1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한국 최고의 ‘금싸라기 땅’이었던 명동의 높은 지대(地代)도 발목을 잡았다. 황동하 회장은 “명동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70%까지 인하해줘도 아무도 안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공시지가는 계속 배로 뛰지, 있는 사람도 나갈까봐 건물주도 세입자한테 을(乙)이 되고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명동8가길의 한 공인중개소 사장은 “임대료가 확실히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공실을 찾는 사람은 전혀 없다”며 “자기 재산이 달린 문제인데, 지금 타이밍에 여기서 장사하겠다고 모험을 걸 사람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명동은 부활할 수 있을까. 황동하 회장은 “코로나 이후에 명동을 지켜갈 것은 결국 화장품인데, 그새 중국 로컬 브랜드가 많이 생겼고 온라인 수출 판매도 하고 있어 과연 관광객들이 명동 로드숍을 찾아 화장품을 살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김영근 대표는 “명동 업주들이 반성을 많이 하고, 옛날처럼 내국인들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판매 아이템부터 서비스, 정책까지 명동 거리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강다은 기자 kkang@chosun.com] [김동현 기자 bo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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