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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콘솔 비디오 게임기 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게 한정적인데요. 닌텐도 Wii,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 마이크로소프트 Xbox One 정도?! 휴대용으로 눈을 넓혀봐도 닌텐도 3DS, 소니 PS VITA 까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업체들과 게임기들이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했었답니다. 이번엔 그 중에서 조연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실패했었던 콘솔 비디오 게임기 13종을 소개 해보려해요.
PC-FX
(NEC, 허드슨소프트) 1994년
PC-FX는 NEC(닛폰 전기)에서 닌텐도의 패미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던 PC엔진의 후계 기종이랍니다.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마치 PC와 같은 확장 시스템으로 성능의 효율성을 높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PC엔진이 고성능의 효율성을 발휘했다면, PC-FX는 동시대의 세가 새턴이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성능자체가 빈약 했었답니다. 결정적으로 당시의 대세 기술이였던 3D그래픽 기능이 배제된 점이 실패요인이 되었죠.
대신 2D동영상 기술에 집중을 하며, 미소녀 연애 게임들만 잔뜩 출시 되었는데요. 결국 마니악한 게임기가 되며 발매 게임 수는 고작 62개! PC-FX의 실패로 NEC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답니다.
버추얼 보이 Virtual Boy
(닌텐도) 1995년
패미컴, Wii, 닌텐도DS 등 콘솔 비디오 게임기계에 전설적인 히트작을 내놓았던 닌텐도에게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요즘 화제가 되는 VR게임의 조상(?)격인 버추얼 보이 랍니다.
컨셉은 가상현실이지만 실상은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3D 영상 게임기 였을 뿐만 아니라, 그 3D화면 조차도 온통 적색!! 초점도 엉망~ 덕분에 눈의 피로감은 엄청났고 두통과 어지러움증까지 유발했죠.
배터리 소모량도 컸고, 더 문제는 그 조악한 3D기능을 살린 게임 타이틀도 몇 없었다는 사실. 당연히 1년도 안돼서 생산 중단이 결정될 정도로 참혹한 실패를 겪게 되지만, 그럼에도 총 판매량은 77만대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답니다.
R-Zone
(타이거 일렉트로닉스) 1995년
미국의 휴대용 게임기 전문 업체인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닌텐도의 게임보이를 갖고 싶지만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공략한, 원시적인 수준의 초저가 게임기를 개발해서 엄청난 판매량을 올린 바 있었는데요.
여기에 고무되었는지 이후에 닌텐도 등 일본의 여러 휴대용 게임기들을 모방한 작품들을 내놓았었답니다. 이 중에서는 나름 성공적인 사례도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죠.
하필, 닌텐도의 흑역사인 버추얼보이를 저가 모방한 R-Zone은 버추얼보이의 단점들(빨간화면, 초첨 최악...)만 모아서 더욱더 발전(?)시킨 결과물이었죠. 당연히 채 2년을 못 가서 단종되고 말았답니다.
오우야 Ouya
(오우야) 2013년
줄리에 울만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만든 차세대 콘솔 비디오 게임기인데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 스타터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당시 IT업계에 큰 주목을 받으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답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배송되며 시제품이 공개된 순간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죠. 조작이 잘 되지 않는 컨트롤러, 렉 현상은 베타버전임을 감안해서 차치할 지라도, 일단 지원 가능한 게임 타이틀 수가 너무 부족했었어요.
더 큰 문제는 그 게임들 마저도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어, 굳이 성능도 뒤쳐지는 오우야를 구입할 이유가 없었던거죠.(독점 타이틀X) 하드웨어가 아무리 창의적이어도 결국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교훈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답니다.
3DO
(3DO) 1993년
정식 명칭은 3DO 인터렉티브 멀티플레이어(3DO Interactive Multiplayer)로, 애플의 마케팅/전략 이사였던 트립 호킨스가 EA를 설립한 이후, EA에서 출자하여 3DO 컴퍼니를 세워 발매했었던 콘솔 비디오 게임기인데요.
일종의 오픈라이선스 개념을 도입해서 라이선스만 취득할 경우, 어느 업체나 게임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었답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져 제조사들의 경쟁을 통해 단가를 낮추려는 주목적이 있었죠.
하지만 실제론 로열티 등의 문제로 가격 경쟁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3D그래픽보다 2D그래픽에 집중했었지만 대세는 3D로 흘러갔었어요. 게다가 게임 타이틀도 상대적으로 너무 부족했었답니다. 그 와중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1 출시는 사형선고가 되었죠.
링스 LYNX
(아타리) 1989년
휴대용 게임기하면 흔히들 일본의 닌텐도 게임보이와 세가의 게임기어를 떠올리실 텐데요. 북미에는 또 하나의 휴대용 게임기가 있어서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었답니다.
바로 미국 콘솔 게임업계의 자존심 아타리의 링스였죠. 우수한 스펙의 성능으로 무장했었고, 훌륭한 조작감에 최초로 회전까지 가능한 게임기였었는데요. 문제는 비슷한 시기 게임보이가 출시 되었었다는 점;
휴대용 게임기로서는 치명적으로 게임보이에 비해 너무 컸었고, 그만큼 배터리 소모량도 많았었죠. 결정적으로 게임보이에 비해 2배나 달하는 비싼 가격으로 유저들의 외면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재규어 JAGUAR
(아타리) 1993년
한때 북미시장을 장악했던 아타리가 아타리 쇼크(E.T.게임 사건) 이후, 일본의 닌텐도와 세가에 안방을 내주다시피 되었는데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64비트 게임기 재규어를 시장에 내놓게 된답니다.
한 때 콘솔 비디오 게임기 시장은 요즘의 폰 카메라 화소경쟁과 비슷한 비트 전쟁이 벌어졌었는데요. 16비트, 32비트 게임기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64비트는 상당히 놀라운 시도였었죠.
기기 자체의 버그, 역대 최악으로 손꼽히는 조작 컨트롤러, 숫자만 64비트고 실제론 부족한 성능, 재미있는 게임 소프트웨어의 부재.. 당연히 안 팔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 뒤를 이은 재규어CD는 더욱더 처참;
CD-i
(필립스) 1991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앞서, 세계적인 가전제품 업계 필립스가 먼저 콘솔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뛰어 들었었는데요. 사실, CD-i는 게임기라기 보다는, 멀티미디어 CD 플레이어라 보는게 맞답니다. PC와 게임기의 중간정도라고 해야할까요?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죠. 기능이 많아서인지 일단 가격이 너무 비쌌고, 닌텐도와의 공조가 틀어지면서 게임 타이틀 수급에도 어려움을 겼었죠. 차라리 게임기로서의 기능에만 집중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기기 랍니다.
GP32
(게임파크) 2001년
대한민국이 만든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인데요. 그만큼 국내에서 여러모로 큰 관심을 받았었던 기종이랍니다. GP32는 우려와 달리 우수한 성능 스펙으로 무장했었고, 프린세스 메이커2(해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R 등 인기 게임타이틀 이식도 기대를 모았죠.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는데요. 바로 당시의 허약한 국내 게임 개발 환경이 발목을 잡게 되었답니다. 경쟁자였던 일본의 게임 소프트웨어와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던 거죠. 잠깐 반짝하긴 했지만 결국 지속성을 갖지는 못했답니다.
드림캐스트 Dreamcast
(세가) 1998년
새턴의 차세대 게임기로 등장한 드림캐스트는, 본격적으로 기세를 올리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세가에서 사운을 걸고 만들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림캐스트를 끝으로 세가는 콘솔 비디오 게임기 사업을 포기하고 마는데요.
사실 드림캐스트는 실패한 게임기라는 말보단, 비운의 게임기라는 단어가 더 잘어울리는 것 같아요. 고성능과 안정성, 우수한 설계에 저렴한 비용까지 팔방미인의 게임기였건만, DVD기능을 탑재한 플레이스테이션2에 참패를 하고 맙니다.
플레이스테이션2 출시 이후 이어진 출혈 마케팅, 70억엔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던 '쉔무'의 대실패, 기종의 잠재적 수명에 대한 유저의 의심(이전 기종의 이른 지원 중단), 그리고 MS의 비디오 게임기(X-BOX) 진출까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해야할까요.
게임컴 Game.com
(타이거 일렉트로닉스) 1997년
닌텐도 따라쟁이 타이거 일렉트로닉스의 또다른 실패작. R-Zone의 처참한 실패 이후 정신을 차렸는지 이번엔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대담한 시도를 했는데요.
터치스크린, 모뎀을 통한 통신기능, 스타일러스펜, PDA기능 등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최적화되지 않아서 실제적으로 사용하는데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사실; 3.5인치의 흑백 액정화면도 퀄리티가 매우 떨어졌었죠.
출시 초기 기대를 모았던 대형 게임타이틀의 수준 낮은 게임컴 이식작들은 수명을 더욱더 단축시키는데 한몫을 했었는데요. 결국 30만대라는 초라한 판매량에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결국 타완구업체 산하에 들어가고 만답니다.
아타리 5200
(아타리) 1982년
아타리 2600으로 북미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석권했었던 아타리가 그 후속 모델로 내놓았던 아타리 5200. 만약 이 기종이 성공적이었다면 지금의 업계 현황이 달라질 수 있지도 않았을까요?
최초로 시도되었던 조이스틱 컨트롤러는 저가의 부품으로 인해 안정성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는데, 버튼이 아니라 숫자패드를 활용한 점도 불편함을 가중시켰었죠. 여기에 저 유명한 아타리 쇼크(E.T.게임 사건)는 결정타!
아타리 2600과의 호환성 문제 해결과정에서의 판단미스로 아타리 2600에 잠재 고객층이 잠식당하는 일도 벌어졌었는데요. 그래도 컨트롤러에 최초의 일시정지 개념을 담은 게임기로 역사에 남았답니다.
피핀 Pippin
(애플-반다이) 1996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애플이 맞아요. 맥 컴퓨터와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 그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낸 애플. 일본의 반다이와 합작해서 만든 콘솔 비디오 게임기인데요. 스티브 잡스가 애플 복귀 후 얼마가지 않아 정리 해버리죠.
오랜만에 미국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게임기로 주목받았지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새턴, 닌텐도64 가 이미 구축한 3강 체제에 끼어들 틈은 없었죠. 그리고 네트워크 PC를 표방했지만, 모뎀성능이 떨어져 네트워크 플레이는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해요.
문제는 반다이 이외의 게임 타이틀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 즐길 게임 타이틀의 너무 적었고, 그나마도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게 하나도 없었죠. 무엇보다 애플답게(?) 터무니없이 비싼가격도 실패에 큰 몫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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