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찬 군인들" 말년 휴가 때 민간인유해발굴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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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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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백암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자원봉사... "마음이 더 무겁다"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이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 심규상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어요."
 
군 말년 휴가를 민간인 유해발굴에 바친 군인들이 있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유해발굴 현장. 아산시와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아래 유해발굴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9일부터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찾고 있다.

아산에서는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돼 암매장됐다. 이곳 백암리에도 최소 수십여 명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6일 찾은 발굴 현장은 높은 기온 탓에 후텁지근했다. 산 7부 능선에는 수미터 깊이의 구덩이를 여러 개 파놓았다. 유해를 찾기 위해 시굴조사를 한 흔적이었다. 조사단원들은 다시 8부 능선으로 자리를 옮겨 땅을 파고 있다. 정해진 깊이까지 호미로 흙을 긁어 파내는 고된 노동이다.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한자리에 밭을 매듯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한다.

10여 명의 공동조사단 중 낯선 얼굴이 보인다. 20대로 보이는 청년 세 명이다. 제대를 앞둔 말년 군인 신분인 이들은 휴가를 나오자 발굴 현장으로 왔다. 이들의 호미질이 예사롭지 않다. 거침이 없고 빠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소속 부대예요. 대학의 문화재 발굴 관련 학과를 다니다 군 복무를 위해 지원했어요."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이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 심규상

   
이들은 군 복무 기간 동안 강릉, 철원, 세종, 경주, 연천 등 전국을 돌며 국군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민간인 유해 발굴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함께 온 동료들과 상의했는데 휴가를 의미 있게 쓰자며 동의했어요."
 
- 1950년 한국전쟁 시기 군인들이 민간인을 살해한 일을 알고 있었나요?
"그럼요. 대학 때 책에서도 봤고, 신문기사도 봐서 알고 있었어요."
 
세 명 모두 국군전사자 유해발굴 외에 민간인 유해발굴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쪽은 전사자인데 다른 한쪽은 억울하게 군인들에게 희생당했잖아요. 때문인지 느낌이 달라요. 뭐랄까... 마음이 더 무거워요."
 
반면 현장 분위기는 이곳이 더 부드럽고 활기가 있단다.

"아무래도 군대는 딱딱하죠. 50분 일하고 10분 휴식하고.. 작업 시간은 같아요. 발굴 장비요? 붓과 호미 들고 하는 일이니 장비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지난 16일까지도 희생자 유해를 찾지 못했다.

"아쉽죠. 하지만 목격자 증언이 워낙 자세하니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의 역사가 없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이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 심규상

  안경호 발굴조사단 책임조사원(4.9평화통일재단 사무국장)은 "귀중한 휴가를 민간인 유해발굴 현장에서 보낸 개념찬 청년 군인들이 대견하기만 하다"며 "유가족과 발굴단원들에게 큰 힘과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함께 공동으로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을 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로 구성된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유해를 발굴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법 제정을 통한 유해발굴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유해발굴은 6번째 발굴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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