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아픈 사람들 소외시키는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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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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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보이는 것들│의료인류학연구회 기획│후마니타스

“어서 감염자를 찾아내서 격리부터 하라는 요구, 감염자는 반드시 그럴 법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거라는 편견, 따라서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솎아내면 사회는 다시 안전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리고 질병과 고통의 경험을 스캔들화하는 언론의 태도….” 새 책 ‘아프면 보이는 것들’에 실린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글의 일부다. 얼핏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서 교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와 에이즈 환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 같은 문제적 태도에 대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전염병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일갈한다.

의료인류학자 13인이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아픔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기존 의료 관련 책과는 사뭇 다른 시선에서 쓰였다. 의료 기술과 의료 시스템이 아닌, 의료 현장에서 만난 ‘아픈 사람들’이 중심이다. 그들이 겪은 아픔에 우리 의료 시스템뿐 아니라 질병 및 사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모순이 응축돼 있다.

지난 1999년 겨울 30대 초반의 한 남성은 폐렴인 줄 알고 병원에 입원했다 느닷없이 에이즈 확진 통보를 받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창고와 다름없는 곳에 격리됐고, 담당 의사는 어떤 설명도 없이 “에이즈”라고 통보하고 사라졌다. 이 남성은 ‘그 어떤 완충장치’도 없이 죽음의 공포에 노출됐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어린 딸을 위해 가습기에 살균제를 꼬박꼬박 넣은 한 아버지는 어느 날 아내에게 “살균제를 넣었던 내 손을 차라리 잘라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뒤늦게 살균제의 위험이 밝혀졌지만, 중학생이 된 딸은 이미 폐가 손상된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갓난아기를 부검하는 게 좋은 애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모 피해자는 피해를 인정받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저자들이 질병에 대해 인류학적 고찰에 나선 이유는 “아파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오해는 제법 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산후풍, 가습기 살균제 참사, HIV, 난임 등 책에 나온 다양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특별하게 잘못한 것도, 유별난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의료 정책과 시스템에 그치지 않고 질병과 돌봄에 대해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이 견지해야 할 태도를 논하고 있다. 저자들의 바람대로,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아파본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는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다. 352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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