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여학생들이 담 넘자 손도 못대… 여경 부른다며 40분 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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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19. 오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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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단체에 뚫린 美대사관저]

2명이 경찰과 실랑이 하는새, 3m 철제사다리 2개 펼치고 담 넘어
여학생 11명 포함 17명이 관저 현관 난입해 "미군은 점령군" 외쳐
경찰 내부서도 "美대사 가족이 해 입었다면 큰 외교문제 됐을 것"


18일 오후 2시 55분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 앞 20m 지점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회원 19명이 플래카드를 꺼내 들고 반미 시위를 시작했다. 남성 8명, 여성 11명이 "해리스(주한 미국 대사)는 이 땅을 떠나라!" "방위 분담금 인상 절대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3m 길이 철제 사다리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당시 미 대사관저를 경비하던 경찰은 30여 명이었다. 10명으로 구성된 1개 팀이 경비에 투입되고, 나머지 인원은 대기하는 방식으로 근무했다. 경비에 투입된 인력은 2명씩 조(組)를 이뤄 총연장 700m 담벼락을 순찰했다.

국내 대사관저는 1964년 국제법으로 발효된 빈 협약에 따라 한국 경찰이 보호 의무를 지는 '공관 지역'에 해당한다. 협약에 서명한 국가에는 '공관 지역을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로부터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하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하지만 경찰은 신고되지 않은 시위가 공관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5분간 별다른 해산 시도를 하지 않았고, 초소 근무자와 인근 순찰조 등 3명이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3시가 되자 시위대가 돌연 철제 사다리를 꺼내 설치하더니 대사관저 돌담을 넘기 시작했다. 시위대 중 남성 2명이 현장을 지키던 의무경찰 2명을 1명씩 막아섰고, 그사이 나머지 회원들이 차례로 월담했다. 경찰은 "사다리를 치우면 시위대가 다칠까 봐 무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4분이 지나서야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했다. 3시 15분까지 경찰 30여 명이 추가로 현장에 도착했지만, 월담은 계속됐다. 3시 30분 지원 부대 50여 명이 추가 도착할 때까지, 총 17명이 담을 넘어갔다. 이들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도착, "주한 미군은 점령군"이라 외쳤다. 남성 6명, 여성 11명이었다.

경찰은 미 대사관 허락을 얻은 뒤 시위대를 쫓아 관저로 들어갔다. 남성 회원 6명을 모두 체포했지만, 여성 회원 11명은 놔뒀다. 이들을 포위한 채 여성 경찰관 도착을 기다렸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 시위대는 신체접촉에 따른 시비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빨리 퇴거 조치하는 것보다 일단 안전하게 이들을 관저 밖으로 보내는 게 중요했다"고 했다. 강제 연행 과정에서 신체 접촉이 발생해 성추행 등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미였다. 시위대는 그사이 페이스북에 자신들의 시위 장면을 올렸다.







3시 40분 여경 부대가 도착해서야 여성 회원들에 대한 체포가 시작됐다. 이날 오후 4시 5분, 집회 참가자 19명이 모두 미 대사관저 침입 혐의(공동주거침입)로 현행범 체포됐다. 이들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등으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남대문서 관계자는 "신원 조회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찰 정보·경비 기능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 파트의 경우, 요주의 대상인 친북단체 회원 약 20명이 모여 벌이는 시위를 사전에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특히 시위가 시작되는 시점에 친여(親與) 성향 통신사·인터넷매체 등의 취재진이 와 있었음에도 경찰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경비 파트도 부실 대응했다. 사다리를 든 대규모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서도 담을 넘는 순간까지 증원(增員) 요청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경찰관은 "미국 대사와 그 가족이 관저에 없었지만, 외교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셈"이라고 했다.





[이동휘 기자]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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